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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발길 닿는 곳마다 힐링

입력 | 2024-10-02 03:00:00

[올 가을엔 농촌 크리에이 투어] 경남 남해군 편
바다와 산촌이 어우러진 ‘보물섬’… 76개 무인도 품은 빼어난 해상 풍광
환경 되살리기 치유-폐교 캠핑 등… 개성 다른 마을서 이색 체험 가능




《코로나19 이후 여행 기호가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 크리에이 투어’(용어설명 참조)를 내놨다. 관광기업이나 예술가, 여행사 등을 지역별 특화 테마관광 콘텐츠 개발과 운영에 참여시키는 게 핵심이다. 저출산 고령화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는 농촌지역의 새로운 돌파구로 제시된 농촌 크리에이 투어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범사업 지역 5곳을 둘러본다.》


가족이라도 원하는 게 서로 다를 수 있다. 농촌을 좋아하는 아빠, 바다를 사랑하는 엄마, 개펄에서 뒹굴어 보고 싶은 아들, 꽃구경이나 반려동물과의 산책을 즐기는 딸. 이를 모두 충족할 만한 여행지는 많지 않다. 하지만 가능한 곳이 있다. 바로 경남 남해군이다.

국내 5번째로 큰 섬이 있는 남해군은 ‘보물섬’이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수축특산물과 각종 지역 명품 등이 일상생활에 소중한 보물이기도 하고, 남해군이 보유한 각종 역사와 문화, 관광, 휴양 자원이 보물과 같다는 의미를 담았다.

실제로 남해군 누리집에 따르면 남해 해안은 360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으로,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연근해어업의 전진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3개의 유인도와 76개의 무인도를 품은 빼어난 풍광으로, 전남 여수시에서 경남 거제시에 이르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다.

이런 자연환경을 200% 활용한 남해군의 ‘농촌 크리에이 투어(크리에이티브+투어)’ 대표 마을 4곳을 지난달 22, 23일 이틀 동안 둘러봤다. 남해군과 지역 주민, 민간 여행사가 참여해 만든 ‘보물섬 탐험대’가 길잡이를 했다. 4곳 모두 이용객이 저렴한 가격으로 편리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폐교 건물을 활용한 숙박시설과 폐교 운동장을 활용한 각종 체험시설, 캠핑장 등을 운영하고 있었다.

●바다와 산촌이 어우러진 갱번마루

‘갱번마루’의 대국산성에서 내려다본 강진만 일대.

맨 처음 찾은 곳은 ‘갱번마루 농촌체험휴양마을’이다. 남해대교를 지나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남해군 설천면 금음, 옥동, 문항, 모천, 고사, 진목, 동비, 내곡, 정태마을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갱번마루’로 불린다. ‘갱번’은 바다를 뜻하는 남해 사투리, ‘마루’는 산마루를 뜻한다. 바다와 산촌이 어우러진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반농반어(산+들+바다) 환경을 활용한 체험에 필요한 자연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바지락과 굴, 조개 등 수산물과 영양이 넘치는 시금치, 마늘, 토종 유자 등 농산물도 풍부하다. 대표적인 상품으로 도둑게 유생털이 관찰부터 전통 염색, 쏙잡이 등이 있다. 최근에는 반려견과 같이하는 ‘댕댕이 치유 천연염색 키트’도 개발했다.

대국산성(大局山城)을 활용한 관광 상품도 눈길을 끈다. 해발 376m에 위치한 대국산성은 통일신라 시대 때 축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1300년의 역사를 품은 1.5km 길이의 산성을 걸으며 보는 비취색 강진만 바다와 주변 풍광은 국내 어디에서도 보기 어렵다.

박명식 갱번마루 위원장은 “지난해에 대국산성 정상에서 즐기는 요가와 명상, 올해에는 반려동물과 산책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며 “새로운 남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인도 되살리기로 치유 체험 가능한 남구마을

‘남구마을’은 무인도 ‘대마도’(앞 오른쪽)와 ‘소마도’를 활용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다음 행선지는 ‘남구 체험휴양마을(시크릿 바다정원·남구마을)’이다. 남해군 남면 북구, 남구, 덕월, 구미 등 4개 마을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체험·숙박시설이다. 구미마을 앞 500여 년 전에 조성된 방풍림, 덕월마을 앞바다에 자리한 대마도와 소마도, 남구마을 남쪽 임진왜란 때 축조된 임진성, 북구마을을 560여 년간 지켜온 느티나무 등을 갖춘 곳이다.

2016년에 처음으로 휴양마을로 지정된 이곳은 2018년 농어촌 인성학교, 2019년 농촌 치유자원 상품화 사업장으로 선정됐다. 이에 걸맞게 남해의 시원한 파도 소리, 뺨을 스치는 구미 숲의 바람, 드넓은 마당에 누워 보는 별바라기 등 오감을 자극할 것들이 많다.

치유를 위한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향기를 통한 치유를 위해 보디워시, 핸드크림, 차량용 방향제 등을 만들거나 족욕 및 온열 반신욕 등이 가능하다. 천황산(소요 시간 1시간 30분)이나 귀비산(3시 30분)을 오르거나 구미 숲, 임진성 등을 산책할 수도 있다.

무인도인 대마도와 소마도에서 할 수 있는 환경 되살리기(비치코밍)를 통한 치유 프로그램은 남구마을만의 특화 상품이다. 김의영 남구마을 이사장(남해군 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 대표)은 “올해 처음 선보인 상품으로, 환경 보전과 여행 체험을 결합했다”며 “젊은층의 호응이 높다”고 귀띔했다.

●바다를 품은 큰 항아리 두모마을

‘두모마을’은 금산, 보리암, 노도 등과 같은 남해군을 대표하는 관광지들이 주변에 밀집해 있다. 노도를 들어가는 선착장에 설치된 조형물.

이튿날 오전에 찾은 ‘두모 농촌체험휴양마을(두모마을)’은 남해군 상주면에 있다. ‘두모’는 마을 모양이 바다를 담은 큰 항아리처럼 생겼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려해상 국립공원 내 유일한 산악공원인 금산이 훤히 보이는 곳에 위치한 폐교를 활용해 숙박시설과 체험장, 캠핑장 등을 뒀다.

사철 계절별 농산물 수확부터 개매기(갯벌에 그물을 쳐 밀물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갇히도록 하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 체험, 각종 해양 스포츠, 반려동물과 캠프닉(캠핑+피크닉) 등이 가능하다.

주변에 남해군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모여 있다. 금산과 보리암, 구운몽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유배당해 살던 노도(櫓島) 등이다. 특히 노도는 김만중이 한글 소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를 집필한 곳으로, 최근에도 소설가 화가 등이 작품 창작을 위해 많이 찾는다.

그래서 아예 공식 명칭도 ‘노도 문학의 섬’이다. 섬 곳곳에 김만중문학관, 작가창작실, 생태연못 등이 설치돼 있고, 금산과 노도와 두모마을 사이에 펼쳐진 앵강만이 연출하는 풍광이 아름다워 산책하기에 좋다. 손대한 두모마을 위원장은 “우리 마을은 관광 및 농촌과 해양을 아우르는 다양한 체험이 가능한 곳”이라며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용이 둘러싸고 돌보는 치유 공간 회룡마을

‘회룡마을’은 폐교 시설을 복합문화공간과 캠핑장 등으로 바꾸고, 지역민과 관광객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네트워크 참여자를 유치하는 데 공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남해군 서면 ‘회룡 농촌체험휴양마을(회룡마을)’이다. 회룡, 중현, 현촌, 도산 등 4개 마을로 이뤄진 곳이다. 회룡(回龍)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망운산의 산세가 꿈틀대는 용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앞바다 건너 광양제철소와 다랑논(산등성이를 깎아 만든 계단식 논), 망운산 등이 어우러져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2021년 폐교한 초등학교 시설을 마을복합문화공간과 힐링센터, 캠핑장, 체험장 등으로 바꾸었다. 단순한 농촌체험마을을 넘어서 관광객, 지역 주민, 관계 인구(특정 지역에 다양한 형태로 관심을 가진 사람) 등이 서로 어울리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다양한 특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민 대상으로 총동창회나 그라운드 골프 동호회 개최 △관계 인구를 위한 예비 귀농·귀촌 교육이나 우프(WWOOF) 농장 운영 △관광객용으로 팜파티 개최, 농산물 가공 전시 등이다. 우프는 197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세계 150여 개국의 유기농 농가에서 일을 도와주는 대신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김미정 회룡마을 사무장은 “주민에게는 소통 공간, 관광객에게는 체험 공간, 관계 인구에게는 귀농귀촌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하자는 취지”라며 “매주 예약이 몰릴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농촌 크리에이 투어란:크리에이티브(CREAtive·창조적인)와 투어(TOUR·관광)의 합성어로, 농촌 살리기의 일환으로 2017년부터 진행됐던 농촌관광 활성화 사업의 새로운 형태. 그동안 추진돼 온 지역 단위나 소규모 체류형 농촌관광상품은 현지 지역주민이 주도해 콘텐츠 개발과 운영을 책임진다.

반면 크리에이 투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농촌관광 관련 중간 지원조직과 민간 여행사가 협의체를 구성해 콘텐츠 개발과 운영에도 관여한다. 지원조직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협의회, 지방공기업, 사회적 기업, 전문가조직 등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조직이면 참여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농촌관광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관광상품 개발과 운영에 전문성을 갖춘 민간의 손을 빌려 보자는 취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크리에이 투어 사업 지원 대상에 모두 20곳을 선정했다.농촌 크리에이 투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웰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 남해=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