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형 한국공공언어학회장
다가올 한글날을 기다리며 세종대왕이 이루고자 했던 소통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종은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
현대 사회에 와서는 어려운 단어를 쉽게 고쳐 써야 한다는 국어순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역시 국민을 향한 소통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국민이 잘 알아듣는 국어를 사용하는 일은 상대를 배려하는 친절함에서 비롯된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공공언어 쓰임새는 고압적이다. 공공언어에서 ‘보이스피싱’이란 단어를 여전히 쓰는 것은 상대방이 알아듣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고압적 자세와 같다.
보이스피싱 주의를 알리는 동네 현수막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차에 경찰서장과 시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어르신들 눈에 보이스피싱이란 단어가 들어올 것 같냐’고 물었다.
“주의를 기울이려면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와 생각의 문을 열어야 하고, 기억되어야 하고, 그 내용을 또래에게 전달하며 공론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보이스피싱은 발음도 어렵고 뜻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겠습니까.”
얼마 뒤 동네 현수막 문구가 바뀌었다. 그런데 ‘사기전화, 전화사기, 문자사기’ 같은 순화어 단어를 내걸지 않은 채 피해 내용을 풀어 설명하는 문구를 사용했다. 그래서 중심 주제어로 촉발할 그 무엇이 없었다.
생각을 일으키는 중심 단어가 있어야 사람들이 그것을 공론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주제어를 빠뜨린 것이었다. 왜 공무원들은 순화어로 제시하는 대체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국어를 사용하여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바로 국어 문화이다. 세상일과 생각을 적절하고 알맞은 말로 표현하려는 마음을 공유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국어는 애써 배우지 않아도 습득할 수 있기에 무시당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 더 세심하고 진지하게 사회 현상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소외, 갈등, 불화는 모두 온전한 국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찍이 세종대왕이 염원하며 실천했던 소통 사회의 꿈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한글날이 됐으면 한다.
김미형 한국공공언어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