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싱크홀 예방 위해 서울 지하 정밀지질공학지도 만들자[기고/이수곤]

입력 | 2024-10-01 22:51:00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


대도시의 싱크홀은 난개발 때문이다. 깊이 약 2m 이내에 묻혀 있는 노후된 상·하수관로의 누수로 인한 토사 유실로 얕은 깊이에 소규모 공동(空洞)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지하 터파기 공사나 터널 공사 시 차수와 보강 미흡으로 공사장 인근의 지하수가 유출돼 깊은 하부의 대규모 공동이 생기기도 한다. 이 같은 경우 상부 지표면 싱크홀이 발생한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서울에서만 총 223건의 싱크홀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올해 8월 2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교차로 도로에서는 대규모 싱크홀(길이 6m, 폭 4m, 깊이 2.5m)에 차량이 빠져 2명이 크게 다쳤다. 서울시에서는 싱크홀의 원인이 일반적인 노후 관로는 아니며, 복합 요인(지형 특성, 기상 영향, 지하 매설물, 주변 공사장 등)으로 추정했다. 그러면서 5월에 지하 2m 깊이까지 확인 가능한 지표투과레이더(GPR) 지하 물리탐사에서 지하 공동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GPR 전수조사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원인을 규명하고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현장 상황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싱크홀이 발생한 도로 밑 지하 12m 깊이에 직경 3m 터널을 굴착하는 ‘빗물펌프장 유입관로공사’가 중단됐다가 설계를 변경하여 다시 진행 중이라 싱크홀과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 이 공사 구간의 시추 지질조사 자료를 보면 편마암의 복잡한 지질인데, 특히 터널 공사가 멈춘 위치 인근에서는 단단한 암석에서 매우 약한 풍화암·토사로 급변했다. 원래의 지하수위가 지표면 아래 3.5m 깊이였으나 터널 공사가 중단된 이후 터널의 바로 상부 위치인 지표면 아래 10.5m 깊이로 급변했다. 이는 터널 공사 중단 이후 지하수와 토사가 터널 쪽으로 유입돼 터널 막장면 상부 인근에 대규모 공동이 생겼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공동이 상부로 계속 이동해 대규모 도로 싱크홀이 발생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

만약 연희동 대형 싱크홀이 지하 12m에 있는 급변하는 지질에서의 터널 공사 때문이라면, 앞으로 싱크홀 대책은 GPR 탐사보다는 정확한 땅속 지질 특성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땅속에는 토사, 암석, 지하수가 분포하므로, 산지를 개발하면 산사태가, 평지를 개발하면 싱크홀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어디가 취약한 지질인지를 알려주는 3차원 정밀 땅속 지질 자료가 있다면 토목공사 시 산사태, 싱크홀 등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사고 후 신속한 원인 파악과 대책 수립도 가능하다.

선진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3차원 정밀 지질 자료 작성을 시작했고, 영국에는 런던을 포함한 5개 대도시의 3차원 땅속 지질공학지도(Engineering Geological Map)가 있다. 국내에서는 필자가 서울 시추지질조사 자료 약 1만 개를 수집해 토사, 암석, 지하수 분포를 3차원적으로 보여주는 서울 땅속 지질공학지도(1998년)를 작성한 바 있다. 여기에 추가해 각종 지하 굴착공사 시 관찰된 암석 내 절리(節理), 단층(斷層) 지질 자료도 포함한 3차원 정밀 지질공학지도가 필요한데 인식 부족으로 아직도 작성되지 않고 있다. 1 대 5000 축척으로 지하 100m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정밀 지질공학지도가 있어야 한다. 인구 1000만의 서울에서 지하 개발이 활발하지만 땅속 정밀 지질 자료가 없는 건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이 없는 것과 같다.

또 연희동 사고의 경우 구의원이 사전에 동영상을 찍어 구청에 신고했는데 마지막 골든타임을 놓쳤다. 아무리 대비해도 재난 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데 주무 관청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중 안전망으로서 지역주민이 24시간 재난 예방 및 위급 시 직접 조치가 가능하도록 기존 민방위 조직을 확대 개편해 인명 피해를 줄여야 한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