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오랫동안 기다려온 가을이 마침내 찾아왔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더위 속에서 매일같이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에게 한국의 가을은 보물과도 같은 계절이며, 그 이유는 땅을 뒤덮는 황금빛 낙엽만큼이나 풍성하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감나무다. 마치 붉은 등불처럼 나무에 매달린 감은 한국의 가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다. 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자란 도시에는 사실상 가을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 한국어를 배울 당시 선생님들이 한국의 사계절을 설명할 때 난감해했던 기억이 난다. 여름은 가장 더운 계절, 겨울은 추운 계절, 봄은 꽃이 피는 계절로 쉽게 설명했지만, 가을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선생님들은 “가을은 과일의 계절”이라고 정의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가을은 자연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는 계절이다. 논밭이 황금색 물결로 변하는 모습은 한 해의 마무리를 알리는 동시에 우리를 성찰의 시간으로 이끈다.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은행잎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가을은 추수를 앞둔 들판과 제철 특산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올해는 과연 가을이 온전히 우리 곁에 머물 수 있을까? 최근 들어 9월까지도 여름 같은 더위가 이어지면서 우리가 알던 가을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단풍 예보를 보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이들의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미리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단풍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에 이걸 느꼈던 것이 바로 전어였다. 한국 속담에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예전 가을에 맛본 전어 맛이 두고두고 기억이 나 이번에도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우연히 ‘전어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서둘러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많은 전어 축제가 대부분 여름에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이상기후가 이어지며 ‘가을 전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뒤따랐다.
점점 더 길어지는 여름과 혹독해지는 겨울 사이에서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이 오래도록 이어지던 예전의 가을은 이제 희미한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직접 체감하는 현실이 되었다. 자연의 변화는 단순한 날씨의 변덕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깊은 성찰과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가을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자,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곧 우리가 사랑하는 가을을 지키는 일과 다름없다. 올가을, 단풍놀이를 떠날 때 그 풍경 속에 숨겨진 더 깊은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환경을 소중히 여기고 가을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작은 실천을 한다면, 이 황금빛 계절은 보물처럼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