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9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는 주식시장이 있습니다. 신흥국 증시 중 가장 고평가된 시장이죠. 어디인지 짐작하시나요. 바로 인도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인도 증시는 올해도 20% 가까이 뛰었습니다. 니프티50지수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2020년 3월)의 3배로 불어났죠. 미국 나스닥보다도 5년 상승률에서 앞섭니다.
인도 경제의 탄탄한 성장세와 해외 투자자의 물결 덕분일 텐데요. 그 못지않게 큰 원동력이 또 있죠. 바로 대박 꿈을 안고 투자의 세계로 뛰어드는 거대한 인도의 젊은 개인 투자자들입니다. 인도 증시 호황을 이끄는 인도 불개미 투자자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잘 나가는 인도 증시를 최근 떠받치는 주인공은 인도의 개인투자자들이다. 사진은 인도 뭄바이의 한 시장의 모습. AP 뉴시스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인도 IPO 시장은 초호황
최근 인도의 주식투자 열기를 상징하는 건 이륜차 딜러입니다. 델리에서 오토바이 쇼룸 두 개를 운영 중인 리소스풀 오토모빌이란 판매점이 지난 8월 말 ‘중소기업 IPO(기업공개)’에 나섰는데요. 1억2000만 루피(약 18억원)를 조달하려는 이 소박한 IPO에 몰린 투자자 청약금액이 무려 480억 루피(7512억원)이었답니다. 직원 8명짜리 중소기업 IPO에 480억 루피?! 투자업계와 언론 모두 충격받았고, 단숨에 이 무명의 이륜차 판매점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죠. 소셜미디어에선 ‘이게 바로 버블의 증거’라는 반응이 이어졌고요.인도 IPO 시장은 그야말로 초호황입니다. 달아오른 증시에 올라타기 위해 기업들이 앞다퉈 IPO에 나서면서 양대 증권거래소(BSE와 NSE)의 IPO 실적은 9월까지 240건, 86억 달러를 기록했죠(중소기업 IPO 아닌 일반 IPO 실적임). 이미 2023년 한 해 동안의 실적(234건, 79억 달러)을 넘어섰고요. 올해 들어 전 세계에서 진행된 IPO(870건) 중 28%를 인도가 차지합니다. 침체에 빠진 글로벌 IPO 시장 전반적 분위기와는 딴판인데요. 연내에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이 상장하면, 기록적인 금액(최대 35억 달러)을 추가로 모으게 될 전망이죠.
인도의 등록된 주식투자자 수 증가 추이. 점점 증가폭이 커진다. 2024년 회계연도가 끝나는 3월 말 9160만명이던 투자자 수가 다섯달 뒤인 8월 8일 1억명을 돌파했다. 인도 NSE 보고서
인도국립증권거래소(NSE)에 따르면 신규 주식 투자자의 40%는 20대입니다. 모바일 주식거래 앱과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면서 젊은층이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현상. 코로나 팬데믹 당시 한국이나 미국과 비슷한데요. 투자 열기 면에선 어쩌면 인도가 한 수 위일지 모릅니다.
이것은 투자인가 도박인가
지난해 8.2% 성장한 인도 경제는 올해도 6%대 중반의 높은 성장률을 이어갈 전망입니다. 주요국 중 경제 성장이 가장 빠른 나라이죠.제조업이 약한 인도는 빠르게 늘어나는 젊은 인구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게 경제의 큰 취약점이다. 사진은 9월 4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가네쉬 차투르티 축제에서 기도하는 인도의 힌두교도들. AP 뉴시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도 투자자들의 강한 욕망을 보여주는 지표가 인도의 엄청난 주식 옵션 거래량입니다. 선물산업협회(FIA)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거래된 주식 옵션 계약의 무려 78%를 인도가 차지했습니다. 이 나라의 지수 옵션 거래량은 지난 4년 동안 13배로 급증(2020년 10.8조 루피→2024년 138조 루피)했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놀라운 증가세입니다.
주식 옵션이란 만기(미래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거나(콜옵션) 팔 수 있는(풋옵션) 권리를 말하죠. 즉, 주가 방향을 잘만 베팅하면 투자금 대비 엄청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지만, 삐끗하면 투자금 100%를 날리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아무나 못 하도록 높은 진입장벽(교육 의무, 기본 예탁금 등)을 세워뒀는데요.
인도에선 이런 파생상품 시장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 수가 2022년 510만명에서 올해 960만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이 신규 투자자 중 절반 가까운 43%가 30세 미만. 다시 말해, 젊고 순진하고 가진 게 없는 젊은층이 주식 옵션 거래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인도의 투자 유튜버 PR 순다르. 흙수저 출신이지만 옵션 투자로 부자가 됐다고 주장하는 인물로, 옵션 투자 전략 영상과 워크숍 코스를 유료로 판매 중이다. 금융당국이 이런 핀플루언서의 불법 리딩방을 단속하지만, ‘옵션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늘어만 간다. PR 순다르 유튜브
물론 옵션거래가 불법은 아닙니다. 또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옵션으로 실제 큰돈을 벌기도 하죠. 얼마 전 미국 트레이딩 기업 제인스트리트가 지난해 인도 옵션 거래를 통해 10억 달러를 벌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정도인데요. 문제는 이 제로섬 게임에서 지고 있는 게 인도의 젊은 개인투자자들이란 점입니다.
인도 증권거래위원회가 지난주 보고서를 냈는데요. 지난 3년 동안 주식 선물·옵션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93%가 손실을 기록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기간 평균 손실액은 20만 루피(약 313만원). 1인당 국민소득(약 2600달러)에 맞먹는 금액인데요. 그럼, 나머지 7%는 돈을 꽤 벌었을까요? 거래비용을 빼고 3년 동안 10만 루피(156만원) 이상 이익을 올린 투자자는 고작 1%에 불과했습니다. ‘옵션 거래로 매일 1% 수익률을 올린다’는 핀플루언서들의 얘기는 역시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수익률이 처참한데요. 인도 증권거래위원회(SEBI) 의장 마다비 푸리 부흐는 이렇게 한탄합니다. “파생상품에 투자하려고 빚을 내고, 부모님 집까지 담보로 잡고 있어요. 이것은 투기적 활동입니다. 가계저축이 생산적이지 않은 경제활동에 들어가고 있어요.”
SEBI는 이제 파생상품 투자 문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를 준비 중입니다. 최소 투자금액을 높이고, 파생상품의 증권거래세를 인상할 예정이죠. 좀 늦은 감은 있지만요.
비싸도 괜찮아? 고평가 인도증시
몇 년 전만 해도 인도 증시는 외국인 투자자가 좌지우지하는 취약한 시장이었지만, 이젠 주식 투자 열풍으로 오히려 개인 투자자가 증시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 NSE 보고서 표지
그 결과 인도 주식시장은 너무 비싸졌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니프티200 지수의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은 24배. 주가가 앞으로 12개월 동안 예상되는 상장사 주당순이익의 24배로 거래되고 있단 뜻인데요. 신흥시장 중엔 단연 톱이고요(대만 16.2배, 중국 8.6배, 한국 7.9배). 다우지수(20.9배)나 S&P500(23.65배)보다도 고평가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당연히 따라옵니다. ‘이건 거품일까? 거품이라면 곧 터질까?’
일단 지금 주가가 너무 높아서 언제 조정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경고의 목소리는 지난해부터 줄곧 나왔습니다. 이런 식이죠.
“시장 참여자의 자비 또는 안주로 인해 많은 주식이 천문학적으로 높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정당한 낙관주의와 근거 없는 행복감의 혼합입니다.”(인도 증권사 코탁 인스티투셔널 에쿼티)
“모두가 호랑이를 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주가 움직임을 예측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미친 시장입니다.”(인도 투자회사 캐피탈마인드 설립자 디팍 셰노이)
하지만 이런 경고음이 워낙 오랫동안 울려왔기 때문인지, 경계심이 커 보이진 않습니다. 사실 지금의 인도 증시 열풍을 이끄는 젊은 투자자들은 ‘조정이라는 걸 보지 못한 세대’라서 더 용감하죠.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자가 지금 투자를 주저하느냐면, 그것도 아닙니다. 8월 초만 해도 인도증시에서 외국인이 순매도를 기록하면서 ‘이제 외국인 떠나나’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웬걸. 9월이 되자 올해 들어 가장 큰 외국인 순매수(5736억 루피, 약 9조원)를 기록했습니다. 인도의 장기 성장 스토리에 대한 해외 투자자 관심은 여전한 겁니다.
JP모건은 9월에 낸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단기적 수요 변동이 영향 미칠 수 있지만, 인도의 장기적 성장 이론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구학적 배당, 강력한 인프라 추진, 제조업의 성장, 산업 친화적 정책, 재생 에너지 용량 증가 등이 그 예입니다.”
경제성장으로 인도의 중산층이 빠르게 늘어날 거란 점 역시 인도 증시엔 긍정적인 요소다. AP 뉴시스
인도 증시 낙관론자들은 특히 인도 개인투자 시장의 성장에 기대를 겁니다. 인도인 1억명이 주식 계좌를 열었다곤 하지만 아직 중국(2억2000만명)의 절반도 안 되죠. 또 인도 가계금융 자산의 7%만 주식이나 펀드여서요(한국은 21.8%). 2050년대까지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늘어날 이 젊은 나라에서 주식 투자 열풍은 이제 막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인도 증시의 장밋빛 성장 스토리에 균열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기업의 이익 성장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죠.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그동안 두 자릿수를 기록해 왔던 상장사 이익 성장률(MSCI 인도 지수 기준)은 최근 분기에 9%에 그쳤습니다.
인도 증시에서 ‘매수’ 등급 주식이 점점 줄어든다는 블룸버그 분석도 있습니다. 애널리스트들의 평가 등급 하향이 이어지면서 니프티200 지수 종목 중 61개만이 매수 등급을 받았다는데요. “많은 주식이 이제 터무니없이 비싸졌다”(DSP뮤추얼펀드 전략가 사힐 카푸르)는 뜻입니다.
지난 5년간 인도 니프티50지수(파란색)와 중국 상해종합주가지수(노란색) 추이.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는 인도 증시에 대한 투자 수요를 부추긴 요인이기도 하다. 구글 금융
한때 한국이 세계 파생상품 시장에서 거래량 1위를 기록했던 적이 있죠(2001~2011년). 그래서 인도 불개미들의 투자행태가 낯설지 않은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9년 연속 성장을 이어가는 인도 증시. 특히 개인투자자가 빠르게 늘면서 IPO 시장이 대호황입니다. 자그마한 중소기업 IPO에도 수천억 자금이 몰릴 정도로 투자열기가 뜨겁습니다.
-파생상품 시장은 활활 타오릅니다. 대박의 꿈을 가진 인도 젊은이들이 고위험 옵션거래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옵션 거래량의 78%를 인도가 차지합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의 93%는 손실을 기록했다고 하죠.
-인도 증시는 선행PER 24배로 고평가됐습니다. 너무 비싼 시장이긴 한데요. 인도 경제의 강력한 ‘장기 성장 스토리’에 힘입어 자금은 계속 유입됩니다. 언제까지 이 행복감이 이어질지 궁금합니다.
*이 기사는 10월 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