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메신저’ 텔레그램이 꼬리를 내렸다. 딥페이크 유통, 마약 밀매, 테러 등 범죄에 악용되고 있으니 협조해 달라는 각국 정부의 요구에도 끄떡 안 하던 텔레그램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등 규제 당국이 성착취물 등 불법 게시물을 지워달라고 하면 바로 삭제하고, 수사기관의 범죄자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도 응할 방침이라고 한다. 우범자들이 몰려드는 후미진 뒷골목 같은 온라인 공간에 환한 가로등을 세우기로 한 셈이다.
▷텔레그램으로선 등 떠밀린 선택이었다.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에서 체포돼 기소된 상황에서 선처를 구하려면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범죄를 방관하는 플랫폼 사업주는 공범으로 간주해 처벌한다는 프랑스 국내법이 위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두로프 CEO는 이용자 간 대화가 서버에 남지 않고, 암호화된 개인정보를 푸는 것도 쉽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체포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정보 제공이 일부 가능하다고 태도를 바꾼 걸 보면 그동안 정부의 협조 요청을 일부러 외면해 온 것 같다.
▷이번 텔레그램 사례는 유해 콘텐츠를 방치하는 해외 플랫폼에 책임을 묻고 시정하도록 하는 게 공허한 목표가 아니란 걸 보여준다. 외국 기업에 무리하게 국내법을 들이대면 통상 마찰이나 사업 철수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지만 설득을 병행하면서 책임을 다하도록 동원 가능한 압박 수단을 마련해놔야 한다.
▷우리는 빅테크 기업들과 상대할 이렇다 할 컨트롤타워가 없다. 여성가족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다. 이들 부처에서 불법 콘텐츠를 발견하면 방심위로 넘기는데 방심위는 구속력이 없는 민간 독립기구다. 플랫폼 기업들에 자율 규제를 요청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삭제 요구 콘텐츠의 30∼40%는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텔레그램을 변화시킨 건 프랑스 사법 당국이고, 호주에서 빅테크들이 눈치 보는 건 온라인안전국이다. 우리도 이런 사례를 참조해 해외 플랫폼 기업들이 불법 유해 콘텐츠 방치를 돈 벌이 수단으로 삼겠다는 발상 자체를 못 하게 해야 한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