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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MI5, 대학 소집해 “스파이 차단”… 美FBI, 中 기술절도 수사 확대

입력 | 2024-10-02 03:00:00

[中에 포섭당한 한국 인재들]
〈하〉 세계가 中에 인재 방어 ‘비상’
美서 경력 쌓고 이주한 중국계 인재… 2010∼2021년 사이 모두 1만9955명
호주 “의심스러운 유학생 비자 거부”… 日, 핵심기술리스트 만들어 관리
전문가 “韓도 유출 대응책 만들어야”




“점점 더 심각해지는 위협에 대해 균형을 맞추고 안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올해 4월 25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모처에서는 일명 ‘MI5’로 불리는 영국 국내정보국 관계자들이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등 영국 주요 대학 부총장 24명을 앞에 앉혀놓고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영국 올리버 다우든 부총리는 이같이 말했다. 브리핑에는 펄리시티 오즈월드 국가사이버안보센터장, 켄 매캘럼 MI5 국장도 참석했다. 정보당국은 부총장들에게 “적대국이 영국의 국가 안보를 침해하려 영국 대학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경고하며 “앞으로 정부는 영국 대학에서 민감한 연구 결과를 훔치는 스파이를 막기 위해 심사를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은 이 모임 소식을 전하며 “특히 베이징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경고가 제기됐다”며 “각 부처 장관들은 중국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 美, 수사 강화하고 인재 확보에 1056조 원 투입

‘첸런(千人·천인)계획’과 ‘치밍(啓明·계명)’ 등 중국의 해외 인재 포섭 정책에 각국이 경계를 강화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에서는 인재와 기술이 중국에 유출되는 사건이 이어지자 수사를 강화하고 있다. 호주는 비자 제도 손질에 나섰다. 일본은 해외 유출을 반드시 막아야 할 핵심 기술 리스트를 만들었다. 한국도 이 사례들을 참고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과 기술 패권 경쟁 중인 미국에서는 2020년 5월 중국행 전세기에 타려던 중국인 정모 연구원(당시 오하이오주립대 소속)이 연방수사국(FBI)에 긴급 체포됐다. 면역학 전문가인 그는 첸런계획 참여 사실을 숨기고 미국 연구기관에서 410만 달러(약 53억 원)의 연구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 연구원은 2021년 5월 미국에서 징역 37개월을 선고받아 복역한 뒤 현재 중국 상하이교통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FBI는 이 사건에 대해 “미국 납세자의 세금으로 이뤄진 연구비를 받아서 중국을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지속적인 위협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산하 스탠퍼드중국경제제도센터(SCCEI)가 올해 7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0∼2021년 미국에서 경력을 쌓고 중국 등으로 이주한 중국계 과학자는 1만9955명이다. 이 중 행선지가 중국, 홍콩인 경우는 2010년 48%에서 2021년엔 67%로 급증했다.

상황이 이러자 미국은 중국의 인재, 기술 탈취를 겨냥한 수사를 확대했다. 2020년 크리스토퍼 레이 당시 FBI 국장은 “전국적으로 중국의 ‘(기술) 절도’에 대한 1000건 이상의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중국은 해외 인재를 흡수하며 국가 과학기술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발표에 따르면 주요 과학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수준을 100%라고 가정했을 때 중국은 2014년 69.7%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82.6%로 급성장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중국에 기술 수준을 역전당했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막는 한편으로 인재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과학기술 분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에 약 8000억 달러(약 1056조 원) 예산을 배정했다. 이 돈은 미국 내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에게 지원되고 있다.

● 호주 EU도 대응… “한국도 모니터링 강화해야”

미국 주도 안보협의체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소속 국가인 호주와 일본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호주는 올해 4월 중요한 국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위험이 있을 땐 유학생 비자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미국이 앞서 비자 관리를 강화해 ‘의심스러운 해외 유학생’의 입국을 차단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기업들에 “해외 유출을 막아야 할 핵심 기술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이 기술들을 사용하는 제품을 생산하거나, 기존 생산량을 늘릴 때도 정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6월 한 중국인 연구원이 중국에 첨단 기술을 유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로 이어졌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0월 첨단기술 보호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중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와의 위험을 줄이고자 한다”며 중국을 겨냥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EU는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기술, 생명공학 등 4가지 영역을 보호해야 할 첨단 기술로 지목했다.

한국도 앞선 사례를 참고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은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나중에 산업 스파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며 “국가 핵심 기술 분야는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술 유출 범죄는 비록 붙잡혀 처벌되더라도 해당 기술만 확보할 수 있으면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벌어진다”며 “보안을 철저히 하고 유출을 스스로 막도록 관련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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