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입시생 대입 상한제” 등 주장 한국 구조개혁 평소 소신 드러내 중립적 역할 벗어나 부처와 갈등 “독립성 훼손 위험” 우려도 나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대학 입시제도에 대해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논쟁의 불을 지피려는 모습이다. 그간 한은 총재들이 통화 정책이나 물가 관리에 집중한 것과 달리 지역 불균형, 농산물 수입, 교육 등 민감한 이슈에도 거침없이 발언에 나서며 이례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한은은 ‘한은사(寺)’라는 별명까지 붙을 만큼 조직 분위기가 조용하고 엄숙한 편이었다. 그간 한은을 이끌었던 수장들은 금리 등 전통적인 중앙은행의 업무 외에는 외부에 의견을 밝히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 총재 부임 이후 한은의 조직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자신들의 전공 분야인 통화정책 외에도 ‘지역 불균형’, ‘차등 최저임금제 도입’, ‘농산물 수입 확대’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특히 8월 27일 한은이 ‘입시 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뒤에는 이 총재가 직접 국내 대학 입시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오고 있다. 보고서 발표 당일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지역 비례 선발제’를 주장하면서 “서울대 교수님들께서 합의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강남 입시생의 대입 상한제’를 주장하더니, 30일 기획재정부와의 타운홀 미팅 직후에는 “성적순 대학 진학이 공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슈의 중심에 섰다.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이 총재는 한은에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더 강력한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의 임기는 2026년 4월로 1년 6개월 정도 남아 있다.
반면 이 총재의 거친 발언이 기준금리 인하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금리 인하 후 집값 급등이나 가계 부채 증가에 따른 비난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라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한은이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총재의 파격 행보가 조직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코앞에 둔 상황이라 한은 내부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한은이 중립적인 역할을 벗어나 다양한 정부 부처와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최근 한은의 행보가 자칫 조직의 독립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며 최근 통화 정책과 관련해서 대통령실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한은이 빌미를 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