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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황형준]김 여사 문제, 시간은 대통령실 편이 아니다

입력 | 2024-10-02 23:12:00

황형준 정치부 차장 


최근 대통령실에선 의료개혁과 관련해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에게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개혁엔 저항이 있게 마련인 만큼 뚝심 있게 추진하면 시간이 지나 필수·지방의료 살리기와 의사 부족 문제 해결 등 의료개혁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국민들이 재평가할 것이라는 의미다. 단기적으로 정부는 생활고 등을 못 견딘 의대생과 전공의가 결국 의료 현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고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재조정 문제도 올해 대입이 끝나면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이야기인 만큼 일단 시간을 끌자는 식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8월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고 했던 발언도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속내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김건희 여사 사과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정면 대응하기보다는 회피하면서 일단 지켜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 여사 사과 이후에도 또 다른 이슈들이 제기될 수 있고 사과 한 번으로 여론을 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반영됐을 것이다. 용산 참모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 어렵다 보니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가 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올해 초 불거진 디올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김 여사의 사과 등으로 선제적 대응을 했다면 총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 뜨거웠던 이슈도 잠잠해질 것이라는 기대는 종종 문제 해결의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야권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이후 2년여 전부터 본격화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끌어안은 채 이 대표의 ‘1인 체제’를 공고히 해왔다. 민주당 구성원들은 검찰의 편파·짜깁기 수사와 억지 기소로 이 대표가 고난을 겪고 있지만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기다림 끝에 거대 야당의 운명은 이제 법원이 쥐고 있는 형국이다.

바야흐로 ‘법원의 시간’이 왔다. 다음 달 15일과 25일 각각 열리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과 위증교사 혐의 재판의 1심 결과가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이 대표가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벌금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위증교사 혐의 재판에서 금고 이상 형을 확정받게 되면 이 대표는 의원직이 상실되고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1심에서 이 같은 선고 결과가 나오면 이 대표 체제는 물론 차기 대선 구도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대표가 선거법 재판에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보전받은 선거자금 434억 원을 반환해야 돼 당이 파산 위기에 몰릴지도 모른다. 반면 이 대표가 의원직 상실형을 면하면 이 대표의 대권 가도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최근 이 같은 모습을 보면 정치권에 앞을 내다보는 전략적 사고가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시간이 약”이라는 격언처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플랜 B’ 없이 기우제를 지내듯 원하는 결과만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지나친 낙관은 자칫 상처만 곪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정책과 정무적 판단에 있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다.



황형준 정치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