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주기도 짧아져 기술경쟁 치열… SK-삼성, 5세대 ‘8단 제품’ 양산 SK, ‘AI 가속기’ 탑재 12단도 공급… “6세대 HBM4서 진검승부” 전망 PC용 D램 범용 가격은 17% 급락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요가 갈수록 인공지능(AI) 등 프리미엄군으로 쏠리며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첨단 분야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내에서도 최신 제품에 대부분의 수요가 집중되는 상황이다. 보통 2년 수준이던 제품 주기도 점점 짧아지는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기업 간 기술력 경쟁이 첨예해지고 있다.
3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HBM 수요의 80% 이상이 5세대 제품인 HBM3E에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절반이 최근 갓 출시된 HBM3E 12단이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메모리다. 12단은 D램 12개를 쌓았다는 의미다.
5세대 HBM3E는 올 3월 SK하이닉스가 8단 제품을 양산한 이래 삼성전자도 연이어 양산에 돌입한 상태다. 용량 등을 업그레이드한 12단은 지난달 말 SK하이닉스가 양산에 나섰고 삼성전자와 미국 마이크론은 현재 제품 검증을 진행 중이다. HBM 12단은 엔비디아와 AMD의 최신 AI 가속기에 탑재될 예정이다. AI 가속기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학습, 개발시키는 데 쓰는 반도체다.
이에 따라 전체 D램 시장 중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에서 내년 30%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AI 고도화를 위한 HBM 신제품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만큼 HBM3E 12단, 더 나아가 6세대인 HBM4에서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메모리 업체에 요구되는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신제품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 3세대인 HBM2E를 양산하고서 4세대(HBM3)를 양산하기까지 1년 11개월이 걸렸는데 이후 1년 9개월 뒤 5세대를 양산했고 6세대 양산 시점은 이보다 더 짧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워낙 시장이 급박하게 바뀌다 보니 기존에 선점했던 선두업체도 방심할 수 없다”며 “시장에서 새롭게 요구하는 기술력을 얼마나 빨리 갖추고 제품 양산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투자업계에서 나오는 HBM 등 AI 칩 과잉공급 논란도 기업들의 실제 공급 역량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까지 시장을 이끄는 분야는 모두 프리미엄”이라며 “문제는 기업들이 최첨단 선단(先端)공정으로 전환해도 프리미엄 제품의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수량은 제한적”이라고 내다봤다. 트렌드포스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HBM 공정 확대를 계획하고 있지만 실제 실현될지는 제품의 성공적인 검증에 달렸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