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인데.”
몇 년 전 지하철역에서 옆에 서 있던 40대 두 남자가 풀어놓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아파트가 계급이 되어 버린 우리 사회.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비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나뉘고, 더 나가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강남 아파트와 비강남 아파트가 구분되고 종국에는 테북(테헤란로 북쪽)과 테남 사람까지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사회의 일원답게, 그들의 대화는 자신들도 아파트에 사는 어엿한 유산 계급이라는 자랑질에서 맴돌았다. 들어오는 기차에 얼른 올라타며 엿들음(?)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뒤끝은 영 개운치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 중 대략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고, 40%는 단독주택이나 빌라, 연립 등 비아파트에 거주한다.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 조성된 경로당 체육관 등 각종 공간의 혜택을 누리는 반면에 비아파트 주민들은 주차부터가 전쟁이고, 보육이나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은 엄두도 못 내는 곳이 태반이다. 주거 만족도를 측정해 보면 아파트 주민과 비아파트 주민의 만족도 차이는 2배 이상이다. 불만족은 주로 외부 공간에서 나온다. 특히 주차와 문화 공간에 대한 비아파트 주민의 요구가 크다.
작년에 우리나라 1인당 커피 소비가 연간 400여 잔을 기록했다고 한다. 세계 평균 100잔을 훨씬 웃돌았는데, 커피숍 이용자의 60%는 ‘카공족’이라고 한다. 커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공부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전국에 2만여 개의 스터디카페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에게 공공도서관이나 문화 공간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씁쓸하다. 이제는 공간복지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다. 시혜성 복지와 달리 공간복지는 주민들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공간을 공공이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소득 양극화에 이어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공간 양극화를 극복해야 하는 시점이다. 공간이 복지라는 생각을 많은 지자체가 공유하길 기대한다.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