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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장-김치 문화는 어떻게 탄생했을까[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입력 | 2024-10-03 22:54:00

게티이미지뱅크


수렵채집 시대부터 세계 각 나라 고유 음식의 발달 역사를 보면, 주위 나라를 모방하여 발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지리적,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고 극복하면서 발달하는 걸 볼 수 있다. 고유 전통 음식의 발달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였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밥과 장, 김치로 대표되는 한식의 근원은 벼, 콩, 고추의 존재에 기원한다. 고조선 이전 수만 년 전부터 우리나라(만주를 포함한 한반도)엔 장립종(인디카)이 아닌 단립종 벼(자포니카)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었기에 밥이 주식이 되었고, 콩이 있었기에 장 문화가 탄생한 것이고, 중남미나 인도와 같은 매운 고추가 아닌 매콤달콤한 우리 고추가 있었기에 김치와 고추장이 탄생한 것이다.

보통 우리가 식물의 원산지나 기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인류학적이다. 특정 지역에서 처음 발견되고 사람으로만 전파될 때, 그 지역을 원산지라 한다. 콩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수백만 년 전에 이미 다른 동물이나 바람에 의하여 각 대륙에 번져서 진화되어 자라고 있었다면 원산지가 어디라고 특정할 수 없다. 벼와 고추가 이에 해당한다.

콩(대두·soy)의 원산지가 만주나 한반도라는 주장은 유전학적으로 증명되었다. 현재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콩이 생산되는 것은 인류에 의해서 전파된 이후이다. 꿩은 콩을 매우 좋아하나 먹고 멀리 날아가서 똥을 싸도 배아가 분해되어 새 지역에서 싹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병아리콩, 렌틸콩, 우리나라 콩의 원산지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인도, 만주로 특정할 수 있다. 콩이 우리나라에 먼저 있었기 때문에 청국장, 된장, 간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벼는 소나무와 같이 바람에 의하여 단립종, 장립종 등으로 분화하여 이미 아시아 각국에 퍼져 버렸기에 원산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흔히 벼의 원산지는 양쯔강 일대의 남중국이나 인도의 아삼 지역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단립종의 기원도 이 지역이라고 꼭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착한 만주나 한반도에 단립종이 있었기에 이를 먹는 밥 문화가 발달한 것이지, 여러 벼 중에 단립종 쌀이 우리 민족의 입맛에 맞아서 단립종을 골라 먹게 된 것은 아니다. 2000년 초에 충북 청주 소로리 유적지에서 1만2500년 전 단립종 벼가 발견된 것을 근거로 단립종의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국내외 방송에서 보도한 적이 있었다. 단립종이 발견되었다는 것만으로 그 지역이 원산지가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리학과 음식학 발달 관점에서 보면 틀렸다고만 말할 수도 없다.

고추도 마찬가지이다. 유전학적으로 보면 고추는 지구상에 1900만 년 전에 나타났다. 매운맛을 모르는 새가 먹고 날아가 똥을 싸면서 대륙 간에 전파되었고 진화되어 200만∼300만 년 전부터 각 대륙에 100여 종의 고유 품종이 이미 자라게 된 것으로 나타난다. 고추의 원산지가 중앙아메리카라는 것은 이러한 생명과학이 발달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수백 개 고추 품종 중 우리 고추(Capsicum annuum)가 우리나라에 있었기에 김치와 고추장이 탄생한 것이다. 멕시코에서 들어온 죽을 만큼 매운 고추로는 김치와 고추장이 절대 탄생할 수 없다. 세계 모든 고유 음식의 탄생은 그 지역의 농산물을 기반으로 필연적이며 우연한 발견으로 탄생하였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