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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강물처럼 풍요롭게 흘러가는 카페[정성갑의 공간의 재발견]

입력 | 2024-10-03 22:57:00


요즘 주말마다 카페 다니는 맛에 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도 가고 운동도 하다가 카페로 넘어가 향긋한 커피와 빵을 먹고 있으면 그저 행복. 주말의 커피는 주중의 커피와 달리 각성보다는 이완에 가까워 금세 보드라운 기분이 된다. 서촌에 사는 내가 가장 자주 가는 곳은 경복궁 쪽에 있는 ‘보안카페’. 최근 ‘아침돌봄’이라는 식사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했는데 오전 8시에 문을 여는 것이 핵심 서비스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처럼 동이 틀 때 문을 열면 더 좋겠지만 대부분 카페가 10시나 되어야 문을 여는 현실에서 8시만 해도 감지덕지. 내가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창가에서 바라보는 이른 아침의 풍경 때문이다.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달리기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지나가고 이따금 육중한 몸 전체를 분홍색으로 칠하고 뒷부분에는 뭉툭한 꼬리까지 그려 넣은 시티투어 버스도 만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몸에 활기가 돌고 애증의 서울이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느껴진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산책하느라 시간이 꽤 흘렀거나 새로운 곳에 가고 싶을 때는 카페 ‘시노라’에 간다. 이곳도 분위기가 압권이다. 구석구석을 나무로 마감해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인데 공간의 주인공은 크고 멋진 생김새의 오디오 기기들. 매킨토시처럼 멋진 브랜드의 앰프와 턴테이블이 근사하고 수납장엔 이곳 주인이 오랫동안 수집한 LP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음악이 있는 공간은 그 옛날 모던다방처럼 기품이 있고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강물처럼 넉넉하고 풍요롭다. 커피 맛은 잘 몰라 평가하기가 그렇지만 이곳의 음식이 감칠맛 나게 맛있다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설탕 알갱이가 작은 보석처럼 우수수 올라가 있는 프렌치토스트. ‘뜨아’(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맛보는 그 보드랍고 달콤한 빵은 몇 번을 먹어도 계속 생각날 만큼 중독적이다. 이곳은 디저트로도 유명한데 단호박 파테와 아이스크림, 프렌치오믈렛과 그릭요거트도 맛있다. 아침 시간을 넉넉히 보낼 수 있는 주말이라 그런 귀 호강과 입 호강이 생생하게 소중하다.

공간을 꾸민 아이디어가 신박하고 그곳에 있다는 게 즐거워서 절로 텐션이 올라갔던 카페는 용산에 있는 ‘엔지니어링 클럽’이다. 클럽장은 건축가 김희찬 소장. ‘끓는 피’답게 공간 전체가 건축적 아이디어로 넘쳐난다. 조명을 긴 밧줄에 연결해 이리저리 끌어당기며 높낮이를 조절하고 건설 현장에서 유리판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기기도 중앙에 묵직하게 놓여 있다. 조명 갓은 3D 프린터로 만든 것이고 고강도 콘크리트로 만든 라운지체어도 구경할 수 있다. 내 공간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민다는 그 박력과 기개라니. ‘엔지니어링 클럽’으로 이름을 정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했다던 충고마저 재미있다. “망하려고 작정했냐? 카페 이름은 자고로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이름이어야 한다. 세 글자면 더 좋다.” 왜 세 글자일까? 소공녀, 실락원, 뭐 이런 것을 상상했나?

이런저런 카페를 찾아다니다 보니 이 작은 가게들이 좋아진다. 한때 골목마다 들어서는 카페를 보며 ‘카페는 그만!’ 하고 불평할 때도 있었는데 더 이상 아니다. 다 잘됐으면 좋겠고 더 재미나고 더 개성 넘치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이만큼 ‘가심비’ 좋은 환대의 공간이 또 있을까 싶고. 내일이면 다시 주말.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