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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임수]집값 띄우기, 편법 증여… 수상한 거래들

입력 | 2024-10-03 23:18:00


서울 서초구 아파트 집주인 100여 명을 모아 단체 채팅방을 만든 뒤 집값 담합을 주도한 ‘방장’이 석 달 전 검찰에 넘겨졌다. 이 방장은 단톡방 멤버들에게 30억 원 안팎에 팔리던 전용면적 84㎡를 34억 원에 내놓으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급매를 위해 싸게 내놓은 집주인과 공인중개사를 압박해 매물을 거둬들이도록 했다. 단톡방에선 저가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의 신상과 사진을 공유하는 ‘좌표 찍기’도 버젓이 이뤄졌다. “이런 부동산은 응징해야 한다”, “허위 매물로 신고하겠다” 등의 단톡방 대화들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졌다.

▷서울에서 집값 담합을 주도한 사람이 형사 입건된 건 처음인데, 앞으로 이런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벌인 기획조사에서도 집값 담합을 포함해 위법 의심 거래가 수백 건 적발됐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억 원 이하로 내놓지 마세요.” “○○억 원 이하로 매물 등록한 공인중개사에 단체로 항의합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주민들이 오픈 채팅방을 만들어 집값을 담합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토부와 관계기관들이 올 상반기 수도권에서 이뤄진 주택 거래 중 수상한 거래를 뽑아내 정밀하게 들여다봤더니, 불법이 의심되는 397건이 추려졌다고 한다. 특히 최근 집값이 많이 뛴 서울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의 45개 아파트 단지가 핀포인트 대상이 됐다. 서울 집값의 대장주 역할을 하는 이들 단지에서는 올 들어 신고가 거래가 속출했는데, 가격 담합이나 가격 거짓 신고 같은 불법 거래가 확인된다면 집값 거품을 만든 꼴이다.

▷불법 의심 사례 중 가장 많은 건 편법 증여였다. 한 20대 매수인은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서울 용산구 아파트를 21억 원에 사들였다. 어머니에게서 빌린 14억 원, 증여받은 5억5000만 원, 주택담보대출 3억5000만 원으로 매매 비용을 충당한 이른바 ‘엄마 찬스’였다. 올 들어 국회의원 후보들은 물론이고 대법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줄줄이 ‘엄빠 찬스’를 동원한 편법 증여 의혹으로 논란이 됐는데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서 만연한 편법·꼼수 탈세가 일반 국민들로 확산된 셈이다.

▷이와 별개로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신고된 전국 아파트 거래 18만여 건을 분석했더니 미등기 거래가 500건이 넘었다. 집값을 의도적으로 띄우기 위해 높은 가격에 실거래가 신고만 한 뒤 잔금을 치르지 않은 허위 거래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 대출을 조이자 가파르게 치솟던 서울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였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이 틈을 타고 집값 담합이나 편법 증여, 실거래가 띄우기 같은 불법 행위가 집값 상승세를 부추기지 않도록 범정부 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