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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창경궁 온실의 비밀… 흙-곤충까지 공부했어요”

입력 | 2024-10-04 03:00:00

‘대온실 수리 보고서’ 펴낸 김금희
문화재 복원-건축 관련 자료 다 찾아
“책에서 얻는 정보 영상이 대체 못해”



2일 소설가 김금희와 함께 서울 창경궁 대온실을 찾았다. 경남 김해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궐내를 보물찾기하듯 돌아다니며 활동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작가는 “예전엔 창경궁 춘당지 위로 케이블카까지 다녔다고 한다. 건축물도 사람처럼 탄생부터 죽음까지 많은 일을 겪는 것 같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소나기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소설가 김금희(45)는 창경궁 처마 밑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20대 중반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창덕궁과 창경궁에 관한 책을 만들던 때였다. 궁궐 답사를 온 첫날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고 한다. 당시 집안은 붕괴 직전이었다. 아버지 사업이 실패하면서 빚쟁이를 피해 이사를 다녔고 부모님은 은둔했다. 기세 좋게 쏟아지던 비와 비가 그친 뒤의 말간 풍경. 그 모습이 20년 가까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신작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를 낸 김금희를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났다. “인생에 뭔가 흠집이 난 것 같다고 느낄 때 그 기억과 많이 싸우게 되잖아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그 기억 자체가 나를 구성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기억을 가지고 또 다른 집을 짓고 수리하고 보존하는 과정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을요.”

신간은 창경궁 대온실을 배경으로 현재의 보수공사와 과거 대온실을 만든 일본인의 이야기를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한다. 대온실은 1909년 창경궁 안에 지어진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 10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킨 대온실을 중심으로 근현대사의 흥망성쇠가 펼쳐진다.

책에는 우진각 지붕, 우물마루 같은 전통 건축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국가유산청에서 발표한 문화재 수리 복원과 관련된 문헌은 모두 읽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록으로 실린 참고문헌 목록만 8쪽에 달한다.

책에는 인물들이 땅을 파다가 겨울잠을 자던 두꺼비를 깨우거나 지렁이, 땅강아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다. “현장에서 작업을 잠시 중단할 때 무엇으로 덮는지, 덮기는 하는지 궁금했어요. 너무 실무적인 부분이다 보니 아무리 자료를 찾아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연구자들 사진 뒤편에 푸른 천막이 덮인 걸 발견했어요. ‘오늘 한 건 했다’ 싶어 무릎을 쳤죠.” 그렇게 하나하나 힌트를 얻어가며 사실성을 높였다.

일제강점기 창경궁은 동·식물원을 둔 유원지 ‘창경원’으로 운영됐다. 책은 태평양전쟁 말기 창경원 동물들이 어떻게 방치되다 아사했는지 보여준다. 광복 후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내쳐진 ‘잔류 일본인’에 대해서도 조명한다. 김금희는 “역사를 좀 더 세밀하게 한 개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그는 “책 읽는 공동체는 영원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 시간을 들였을 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속도와 양을 영상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2월 극지 과학자들이 등장하는 차기작을 위해 한 달간 남극 세종기지에 다녀왔다. 조디악 보트가 뒤집힐 때를 대비해 수중 훈련 등 사전 훈련도 받았다. 과학자들과 지내며 이끼, 대기 등 한 가지 연구 주제에 꽂혀 있는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고 한다. “제가 고집쟁이들을 되게 좋아해요”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작가 역시 그들만큼 단단해보였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