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캘리포니아 법보선원장 덕일 스님 부모님에겐 편지 한장 남기고… 서울대 불교동아리 9명과 출가 ‘탈종교화 시대’ 불교서 해답 구해… 새로운 불교 모델 만들고 싶어
미국에서 활동 중인 덕일 스님은 “오랜 세월 불교가 다양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적응하기 위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안다면 새로운 불교의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땐 출가만 하면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알 수 있겠다 생각했지요. 30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하하하.”(덕일 스님)
1996∼97년 서울대생 9명이 두세 명씩 짝을 이뤄 한꺼번에 출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대 불교 동아리 ‘선우회’ 출신인 이들은 평소 독실하게 불교 공부를 해왔는데, 급기야 진짜 출가를 해버린 것. 이들 중 한 명인 덕일 스님(미국 캘리포니아 법보선원장)은 계산통계학과 89학번으로, 졸업 후 1996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가 같은 해 출가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군 법당에서 만난 그는 “동아리였지만 다들 불교에 진심이라 매일 아침 7시에 모여 108배와 참선, 경전 독송 등 머리만 안 깎은 반(半)수행자 생활을 했다”라며 “그래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출가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덕일 스님은 “원래 삶과 죽음의 문제에 생각이 많았다”라며 “엄한 집안 분위기 탓인지 늘 내 마음을 꽁꽁 묶고 있는 사슬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걸 벗어버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불교 동아리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그는 ‘저질러 버렸다’라고 했지만, 출가가 말처럼 쉬울 수는 없는 일. 그는 “처음엔 부모님께 큰 상처를 주면서까지 출가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라며 “그래서 일종의 절충으로 한의대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한의사가 되면 출가까지는 아니어도 일과 수행을 병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것. 하지만 막상 입학하니 생명을 다루는 게 그렇게 제 생각대로 적당히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자퇴했다고 한다.
“허락을 받고 하려 했으면 아마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편지만 남기고 떠났지요. 당시에는 단호하게 인연을 끊고 성불해서 부모님을 제도하면 더 크게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공부하다 보니 부처님께서 결제(結制·수행을 위해 안거에 들어감) 중에도 부모님이 아프면 내려가서 봉양하는 게 맞는다고 하셨더라고요. 제가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한 거죠. 10년 만에 뵙는데, 그 불효를 어찌 다 갚을지….”
출가 후 그는 스리랑카 페라데니야대에서 불교 고전어를 수학한 뒤 미 버지니아대에서 종교학 석사,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미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법보선원에서 선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서 10년 넘게 공부와 수행을 병행하는 이유에 대해 “불교의 새로운 방향을 찾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종교를 가리지 않고 탈종교화는 이미 드러난 현상이 됐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보존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불교의 미래를 열 열쇠겠지요. 그런 면에서 긴 세월 불교가 다양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적응해 왔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불교 밖에서 객관적으로 불교를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지요.”
덕일 스님1994년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1996년 경희대 한의학과 입학. 1997년 녹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2001년 범룡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 수지. 스리랑카 페라데니야대 수학(불교 고전어), 미국 버지니아대 종교학 석사,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불교학 박사. 현 미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가든그로브 법보선원 선원장.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