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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한애란]탈원전만큼 위험한 태양광 외면

입력 | 2024-10-03 23:12:00

한애란 경제부 기자


반도체도 아닌데 2년에 두 배로 커진다는 ‘무어의 법칙’이 통하는 분야가 있다. 성장세가 워낙 기하급수적이라 전문기관 예측이 번번이 빗나갈 정도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확장하는 전력원, 바로 태양광 발전이다.

리서치기관 블룸버그NEF가 전망한 올해 전 세계 태양광 발전 신규 용량은 592GW. 누적 기준으로 글로벌 설치 용량이 1TW(1000GW)를 넘어선 게 2022년인데, 2년 만에 지구는 2TW를 훌쩍 넘는 태양광 발전 용량을 보유하게 됐다. 이 시장을 오랜만에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믿지 못할 수치일지 모른다. 2009년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에 전 세계의 태양광 누적 설치 용량이 244GW일 거란 지극히 소박한 전망을 내놨었다.


전 세계 휩쓴 태양광 붐


태양광 발전에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억지로 키워가던 건 이제 옛말이 됐다. 패널값 폭락으로 이젠 가장 저렴한 발전원이 됐기 때문이다. 태양광 패널 가격은 W당 0.1달러 수준. 지난해 초의 절반, 12년 전의 10분의 1, 36년 전과 비교하면 100분의 1이다.

비싼 전기요금에 지친 기업과 개인이 자체 태양광 발전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독일에선 주택 발코니 난간에 빨래 널 듯이 걸면 되는 셀프 설치 태양광 패널이 유행이다. 파키스탄은 공장과 가정집의 옥상 태양광 설치가 급증하면서, 전력소비량이 줄어든 국영 전력회사가 비상이다. 정전이 일상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지붕 태양광이 비상용 발전기와 손전등을 대체했다. 케냐 난민촌, 말라위 시골 오두막도 태양전지로 휴대전화를 충전한다. 이제 전기는 전력회사가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을 깔아 줘야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값싼 태양광 덕분에 일반 시민도 전력 생산의 주도권을 갖게 됐다.

태양광 발전이 전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 석탄·가스·수력·풍력·원자력보다 아직 뒤지지만, 조만간 하나씩 제쳐 나갈 예정이다. IEA는 모든 시나리오에서 2030년대 중반이면 태양광이 전 세계 최대 전력원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본다. 본격적인 태양광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거꾸로 가는 한국 태양광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글로벌 시장 이야기일 뿐. 한국은 딴 세상이다. 국내 태양광 신규 설치량은 2020년 4.6GW로 정점을 찍고 내리막이다. 올해는 2.5GW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성장은커녕 암흑기다. 전 정부 시절엔 너무 서둘러서 태양광 발전 보급에 나서느라 보조금을 쏟아붓더니, 정작 경제성 확보로 전 세계에 태양광 붐이 일어난 지금은 정부가 외면한다. 도통 박자가 맞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줄면서 기존 태양광 산업 기반뿐 아니라, 미래 기술력까지 흔들린다는 점이다. 신소재 페로브스카이트를 이용한 차세대 태양전지 기술은 지난 10년간 한국이 세계 최고였던 분야. 하지만 관련 과제는 연구비 삭감의 직격탄을 맞았고,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며 대학원생들은 박사과정 지원을 꺼린다. 그사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중국은 이 분야에서 선두로 치고 올라왔다. 신기술 상용화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자칫 한국이 잘하던 분야를 다른 나라에 내줄 판이다.

세계적 추세와 따로 가는 정부 정책, 세계적으로 인정받고도 국내에선 찬밥 신세가 된 기술력. 지금의 한국 태양광은 전 정부 시절 원자력을 떠올리게 한다. 탈원전 정책의 결말을 봤기에 더 걱정스럽다. “에너지는 우리의 생존이 달린 분야인데, 이상하게 에너지가 정치화됐다”는 태양전지 석학 석상일 울산과학기술원 특훈교수의 한탄을 전한다. 


한애란 경제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