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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마약 운전’의 폭주…약물운전 사고 급증, 면허취소 4년새 2배로

입력 | 2024-10-04 03:00:00


지난달 28일 오전 2시경 서울 강남구 신사역 2번 출구 인근 도로에서 전국 첫 ‘약물운전 단속’이 시행됐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

올 8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30대 남성이 운전 중 신호대기 중이던 앞차를 들이받았다. 가만히 서 있는 차를 뒤에서 추돌한 데다, 사고 직후 운전자는 동공이 풀려 있었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이었다.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마약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가해 운전자는 필로폰 양성이었다. 그보다 한 달 전에도 강남구에서 마약을 투약한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냈다. 4월에는 차량 대 차량 추돌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약물 양성으로 드러난 적도 있었다. 이처럼 마약 등 약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곳곳에서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처벌 수위는 음주 운전보다 약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복용 운전으로 운전면허를 취소당한 사례가 최근 4년 새 2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2019년엔 57명, 2020년 54명, 2021년 83명, 2022년 79명으로 늘다 지난해 113명으로 크게 뛰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의 연령대는 20대부터 40대 등 다양하며, 적발되는 마약의 종류도 케타민과 대마초, 엑스터시 등 여러 가지”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마약 등 약물을 투약한 뒤 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도로교통법상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반면 음주 운전은 2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량이 더 높다. 음주 운전이 가중 처벌도 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약물 운전의 처벌 수준은 음주 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환각-환청 마약운전, 음주보다 위험한데 처벌수위는 절반




마약운전 면허취소 2배로… 키트에 침 뱉으면 10분 안에 판독
마약운전 면허취소 급증하는데
법 미비로 검사 강제할 권한 없어
전문가 “형량 높여야 예방 가능”


마약 등 약물 11종에 대한 투약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타액형 마약검사키트. 서울강남경찰서 제공

“약물 투약 여부 확인하겠습니다. 키트에 침을 뱉으면 됩니다.”

지난달 28일 오전 2시 반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2번 출구 근처 도로. 마약류 및 약물 운전 단속에 나선 경찰이 단속 지점에 다가온 차량을 세운 뒤 운전자를 내리게 했다. 경찰이 약물 검사를 위한 타액형 마약 검사 키트를 내밀자 운전자는 지시대로 키트에 침을 뱉은 뒤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경찰 관계자는 “신사역 일대는 클럽과 술집이 많고, 이곳에서 마약을 한 후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한다”며 “키트를 이용하면 11종의 마약 및 약물 양성 여부를 10분 안에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경찰, 처음으로 약물 운전 단속 나서

강남경찰서는 이날 전국에서 처음으로 약물 운전 단속을 실시했다. 지난해 8월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에서 약물을 복용한 20대 남성이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 인도로 돌진해 2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사건 등으로 시민의 불안감이 커지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경찰은 운전자가 음주 반응이 없더라도 동공 변화, 흥분, 말더듬, 구토 등의 증상을 보이거나 과속, 급발진, 지그재그 운행 등 비정상적인 운전 행태를 보이면 약물 복용 여부를 검사했다. 단속에 나선 한 경찰은 “약물에 취해 운전하면 차가 비틀거리거나 급제동, 급가속을 한다”며 “동공이 풀려 있다거나 횡설수설하는 것 등도 일반적인 음주 운전과의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다면 현행법에 따르면 아직 경찰에게 약물 운전 검사를 강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운전자가 키트 검사를 거부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때문에 이와 관련해 권한과 강제력을 부여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단속에서 적발된 여성 운전자는 음주는 했지만 약물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와 일단 훈방 조치됐다. 경찰 관계자는 “약물 운전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단속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 지난해 113명이 약물 운전으로 면허 취소

경찰청에 따르면 약물 운전으로 인한 운전 면허 취소자는 최근 4년 사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2019년 57명이었는데 지난해엔 113명이었다. 약물 운전이 부상,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인천 계양구에선 20대 운전자가 차를 몰다 오토바이를 치어 30대 운전자를 다치게 했다. 조사 결과 가해 운전자와 옆 좌석 동승자 모두 케타민 양성 반응이 나왔다.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올 4월 강남구 한 도로에서 차량 추돌 사고가 발생했는데 경찰이 조사해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간이 시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둘 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입건했다. 같은 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는 필로폰을 투약한 20대 운전자가 오토바이와 차량들을 추돌해 50대 배달노동자가 숨졌다.

약물 운전은 환각이나 환청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크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아편성 진통제를 복용한 운전자는 추돌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정상인의 2배 이상이었다. NIH는 “대마초는 운전자의 반응 시간을 늦추고 시간과 거리에 대한 판단을 손상시키며, 코카인이나 메탐페타민은 운전자를 공격적이고 무모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아편성 진통제는 졸음, 어지럼증을 유발하고 사고 및 판단에 관한 인지 기능을 손상시킨다.

● 전문가 “처벌 강화 없이는 예방 힘들어”

하지만 현행법상 약물 운전의 처벌 수위는 음주 운전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약물 운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약물 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의된 가운데 위원회 심사가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 없이는 약물 운전의 증가세를 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마약은 나이와 관계없이 소지만 해도 처벌을 받는 범죄인데 약물을 한 뒤 운전을 했으면 형이 훨씬 무거워야 정상”이라며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