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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음에 들어, 밥. 건들지 마” [후벼파는 한마디]

입력 | 2024-10-05 16:00:00

[후벼파는 한마디] 파일럿 편
조커 시리즈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 속 신념에 차서 쉴 새 없이 떠드는 조커 캐릭터의 인기는 가히 컬트적이다. 이들 시리즈를 거쳐 아예 배트맨을 제치고 주인공 자리를 꿰차기까지 한다. ‘조커’(2019)를 거쳐, 최근작 ‘조커: 폴리 아 되’(2024)가 그 인기를 입증하는 작품이다.

배트맨 원작 영화 시리즈 명대사를 찾아보면, 조커 지분이 더 높다. 시리즈 최고 명대사를 꼽으면 빠지지 않는 “왜 그리 심각해?”와 “너는 나를 완성시켜”(다크 나이트), “난 내 삶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뭣 같은 코미디였어” (조커) 같은 대사가 모두 이 악당 입을 통해 나왔다. 스크린을 뚫고 나와서 밈(meme)으로 승화된 대사들이다.

위 명대사에 비하면 다소 약할지 몰라도, 조커 최고 명대사로 팀 버튼의 ‘배트맨’(1989) 속 한 장면에서 나온 대사를 꼽는 이도 적잖다. 조커(잭 니컬슨)가 부하들과 함께 영화 배경 중 한 곳인 플루겔하임이라는 가상 박물관에서 온갖 예술품들을 난도질하다가, 한 작품 앞에서만큼은 부하를 멈춰 세우며 말한다.

“이건 마음에 들어, 밥. 건들지 마.”(I kinda like this one, Bob. Leave it.)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1989). 박물관 난동 중 조커가 부하를 제지하는 장면. 워너브라더스 제공.

조커가 멈춰 세운 작품은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고깃덩어리와 인물’(1954). 조커가 기존 예술을 모욕하는 와중에도 왜 이 작품만큼은 남겨두었을까. 시리즈 팬들 사이에선 다양한 해석이 있다. 

우선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 영화 상영 당시에도 생존 인물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시각. 조커와 부하들이 마음 놓고 파괴한 작품들은 렘브란트 판 레인(직물조합 위원회, 자화상),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저울을 든 여인) 같은 작품들이다. 특히 역사적 인물로 미국 1달러 지폐에 그려진 조지 워싱턴 초상화를 두고서 조커가 중의적인 의미로 ‘1달러짜리’라고 낮춰 말하는 장면과 대조되기에 나온 해석이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어딘가 흡족하지 않다.

그보다는 팀 버튼의 조커를 현대 개념미술가에 대한 비유로 보는 팬들 시각 쪽이 더 흥미롭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극중의 예술 박물관, 조커 패거리는 붐박스를 들고 경쾌한 프린스 음악을 틀어놓은 채로 기존 작품 위에 물감을 끼얹고 낙서를 새긴다. 이 키치한 액션 페인팅이 조커가 완성된 작품의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고, 이보다 표출 자체를 더 우위에 두는 현대 예술의 제스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에 담긴 엄숙성을 비틀고 패러디한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에서 조커가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신성은커녕 한낱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 존재에 대한 냉소에서 조커 자신의 모습이 비쳐 옹호했다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프랜시스 베이컨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은 동아일보 칼럼 [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신이 되고 싶은 인간, 인간이 되고 싶은 고깃덩어리’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작 ‘다크 나이트’ 속 한 장면(아래 캡처).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 구도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워너브러더스 제공


팀 버튼의 조커 재해석과 박물관 난동 장면이 워낙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은 다른 배트맨 & 조커 작품에서 오마주 된다. 지금도 해석이 새로 나오는 팀 버튼 영화 속 장면과 대사 덕분에, 그 이후의 조커 캐릭터 해석에도 탄력이 붙게 됐다. (공교롭게도 놀란 감독 역시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에 매료돼 있었기에, 자신 작품 속 조커 이미지를 베이컨 작품에서 따온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2019) 속 집 문 위에는 의미심장한 그림이 걸려 있다(아래 캡처). 조커가 보는 그림과 걸려 있는 그림은 토머스 게인즈버러의 ‘파란 옷을 입은 소년’이다.


감독마다 조커 해석을 겹겹이 내놓고, 관객 또한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조커의 의미를 확장한다. 조커 영화를 보는 이 독특한 재미가 이 장면과 대사에서 비롯됐다. 창작자를 벗어나서 의미가 재창조된다.

그 파괴적 제스처 때문만 아니라, 재창조라는 관점 때문에라도 ‘박물관’ 씬과 대사는 더 할 수 없이 현대적으로 읽히게 됐다. 신작 ‘폴리 아 되’에서 조커의 예술성도 기존 작품(팀 버튼, 크리스토퍼 놀란 실사 영화 시리즈, 만화 시리즈 등)의 오마주를 통해 표출된다. 시리즈의 팬들은 이번 작품에선 어떤 과거 조커를 인용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금 보니 1989년 작 조커의, 즉흥적이면서도 기존 작품을 의식하는 제스처는 캐릭터의 운명을 암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 인용과 임의성에 이끌려갈 현대성의 향방까지도.



임현석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