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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옛날이 좋았다? 포장된 과거일 뿐

입력 | 2024-10-05 01:40:00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손성화 옮김/456쪽·2만2000원·어크로스




붉은 천을 덧댄 의자, 포근한 크림이 얹어진 비엔나 커피. 턴테이블에서는 12인치 LP가 이따금 튀는 소리를 내며 1990년대 히트곡 ‘가을 아침’과 ‘샴푸의 요정’을 흘려보낸다. 크롭톱과 통 큰 청바지로 끌밋하게 꾸민 사람들이 카페에 둘러앉았다.

30여 년 전 음악다방 같기도 한 이곳은 2024년, 전국 곳곳에 포진한 뉴트로 카페의 풍경이다. 1980, 90년대에 어린 꼬마였거나 태어나지도 않았던 오늘날 젊은층이 과거에 향수를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이 책은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질병으로 분류됐던 노스탤지어(nostalgia)의 기원과 시대별 변천사를 세밀하게 짚으며 그 이유에 대해 알아본다.

“지나간 때에 감정을 채우고 장밋빛 조명을 비추는” 노스탤지어는 비단 21세기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종교 전쟁, 제국주의, 산업화 등 크고 작은 사회적 변화가 발생할 때마다 벌어졌다. 노스탤지어의 역사를 총 10장에 걸쳐 파헤친 책에 따르면 노스탤지어는 1669년, 스위스 용병들 사이에서 확산한 ‘향수병’을 의사인 요하네스 호퍼가 최초로 규명하며 역사에 기록됐다.

그리움의 정서가 반대 진영을 넘나들며 선전 도구로 이용됐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18세기, 노스탤지어는 노예로 끌려간 비백인종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지표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 제국주의 백인들이 ‘문명화된’ 생활에서 겪은 병리적 반응으로 풀이됐다. 2016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며 보수 진영을 집결시켰고,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분열 없던 공동체적 조국에 대한 향수를 소환했다.

오늘날 되풀이되는 ‘노스탤지어 유행’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1970년대 불황에 빠진 미국에서는 1920년대 패션, 먹거리, 교육 등이 맹목적으로 유행했다. 이에 저자는 책 ‘좋았던 그 시절: 끔찍했지’를 인용한다. “우리는 그 당시 실업자들의 굶주림과 절망, 범죄와 부패는 망각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나쁠 수 있지만 ‘좋았던 그 시절’에는 한없이 더 나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