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특검법’ 두 번째 부결] 贊 194-反 104-기권 1-무효 1… 무효표도 찬성 뜻하는 ‘가’ 길게 적어 “용산 방어막 느낌, 자존심 상해해… 金여사 직접 사과 등 해법 시급”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상훈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4일 재표결에 부쳐진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최소 4표의 이탈표가 나오자 국민의힘 내부는 “살 떨리는 백척간두 상황”이라며 술렁였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뿐 아니라 한동훈 대표가 “반드시 막자”며 당론으로 부결을 정했지만, 무기명 투표 결과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김건희 여사 리스크로 민심이 이미 임계점에 달했다며 들끓는 여당 내부의 기류가 표결 결과로 반영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다시 발의하겠다고 벼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이탈표가 더 늘어나면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모른다는 분위기가 당을 덮고 있다. 당내에선 “대통령실이 김건희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해 추가 특검법 재표결 때 이탈표가 8표를 넘어 가결되면 곧바로 윤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특히 김 여사 관련 증인들이 줄줄이 국회로 불려나올 이달 국정감사와 선거법 공소시효(10월 10일)를 감안하면 대통령실이 김 여사 직접 사과를 비롯해 빨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무효표도 찬성 뜻하는 ‘가’ 길게 적어
이날 본회의는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긴장되는 투표인가 보다. 17대 때부터 의원을 했는데 의원 전원 투표는 처음 본다”고 했다. 국민의힘 전원이 참여한 무기명 김건희 특검법 표결에서 찬성 194표, 반대 104표, 기권 1표, 무효 1표가 나왔다. 야권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는 가정 아래 2명은 적극적으로 당론에 반대하고 2명은 소극적으로 당론에 반대한 결과로 해석된다. 기권 1표는 백지로 제출됐고, 무효 1표는 찬성을 뜻하는 ‘가’의 ‘ㅏ’를 길게 늘여 무효가 된 표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부권 행사로 국회로 돌아온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300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에 이날 찬성 2표에 더해 기권·무효표가 찬성으로 돌아서고 4명의 추가 찬성이 나오면 향후 민주당의 김건희 특검법 처리 정국에선 부결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한 여당 의원은 “8명 찬성하면 끝인데, 지금 딱 백척간두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처리 시도 회차를 거듭할수록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21대 국회였던 2월 29일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에선 국민의힘에서 110명이 표결에 참여했고, 반대 109표, 무효 1표가 나왔다. 당시에는 여당에서 “사실상 이탈이 없었다”고 자축했다. 하지만 이날 결과를 두고선 원내지도부에서도 예상보다 이탈표가 많다며 당혹해하는 기류다. 한 재선 의원은 “원내지도부의 강력한 표 단속이 없었으면 큰일날 뻔했다. 살 떨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 “의원들 용산 방어막 자존심 상해해”
6선 중진 조경태 의원은 “마치 우리가 용산의 방어막이 된 느낌”이라며 “의원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자존심 상해하는 분들도 있다. 용산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게 국민들의 굉장히 불만스러운 대목 아니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도 “생각보다 굉장히 위협적인 숫자가 나왔다. 선제적으로 빨리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고, 정성국 의원은 “의원들도 당황하고 혼란스럽다. 다음은 장담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명태균 씨 등 최근 김 여사와의 친분을 앞세운 인물들의 문자메시지, 녹취록 등이 잇따라 공개되는 가운데, 이들은 이번 국정감사에 증인 또는 참고인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날 결과에 대한 친윤(친윤석열) 진영의 반발도 감지됐다. 한 친윤계 의원은 “일부 친한계 인사가 유튜브 등에 출연해 정제되지 않은 언행을 하는 등 단일대오를 혼란스럽게 했다”며 “이렇게 가면 공멸”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아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대통령 내외가 결정할 문제지 참모들이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다른 관계자는 “그냥 뭉개지 말고 일단락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사과 이후의 플랜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반대하는 쪽으로 갈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