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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규모가 아닌 서사…스타디움 공연 ‘엔진’

입력 | 2024-10-06 09:07:00

5일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서 세 번째 월드투어 포문
보름달 등 뱀파이어 서사 녹인 연출 눈길



ⓒ뉴시스


직전 투어 ‘페이트(FATE)’ 대비 4배가량 커진 메인 무대의 길이는 약 64m. 이곳엔 총 6개의 초대형 LED가 설치됐다. 스타디움 공연답게 그라운드도 넓게 사용했다. 화려하게 쏘아 올린 불꽃은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달래줬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5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펼친 월드투어 ‘워크 더 라인(WALK THE LINE)’의 첫 공연은 이들의 국내 첫 스타디움에 걸맞은 규모가 우선 눈길을 끌었다.

소속사 빌리프랩의 모회사 하이브(HYBE)의 자본 뒷받침이 공연의 질을 끌어올린 것이다. 위버스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지켜봐도 위압감을 줬다.

그런데 형식만큼 중요한 게 엔하이픈의 공연 서사다. 이 부분이 엔진이 돼 공연을 끌고 간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한 엔하이픈은 K팝계 ‘트와일라잇’ 서사를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뱀파이어는 잔인함을 갖춘 공포의 대상임에도 오래 전부터 대중문화 영역에서 감성적인 무엇으로 다뤄져왔다. 영화, 뮤지컬 등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불멸에 대한 욕심, 에로틱함에 대한 욕정, 순수함에 대한 욕망 등이 빚어낸 사랑 정경의 고달픔을 드라마틱한 감정선으로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K팝계에 이런 정서를 가져온 것이 엔하이픈이다.
미니 4집 ‘다크 블러드’, 미니 5집 ‘오렌지 블러드’에서 선보인 뱀파이어 세계관은 하이브 오리지널 웹툰 ‘다크 문: 달의 제단’과 롯데월드 어드벤처에서 물리적인 구현이 이뤄졌고, 두 번째 월드 투어 ‘페이트’에서 현현했다. 일본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애니플렉스는 엔하이픈 웹툰을 애니메이션으로도 옮긴다.

최근작인 정규 2집 ‘로맨스 : 언톨드(ROMANCE : UNTOLD)’에선 이전 초자연적인 분위기보다 현실에 더 방점을 찍었지만 소년과 소녀는 여전히 뱀파이어처럼 세상에 정체를 숨긴 채 만남을 이어나간다.

콘서트에선 뱀파이어 화법의 서사가 더 도드라진다. 피가 빨린 듯 순백의 피부를 가진 엔하이픈 멤버들은 햇빛을 뮤즈에게 세금으로 바친다. 쏟아지는 노래·춤의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며 팬덤 엔진(ENGENE)을 유혹했다. 그건 단순한 이성적인 매혹이 아니다. 어둠의 힘겨움을 뚫고 항상 엔진을 켜둔 채 너의 손을 잡겠다는 일종의 약속이다.

막판 ‘문스트럭’에서 눈썹달이 보름달로 차오르는 황홀한 광경, 정규 2집 타이틀곡이자 이날 무대의 화룡점정인 ‘XO(Only If You Say Yes)’에서 분홍 달이 무대를 뒤덮는 장면은 이들의 서사가 공연에서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정원은 “엔하이픈의 결말은 언제나 엔진과 함께 하는 거다. 같이 걸어가고 있는 손 놓치지 말자”고 했다.
데뷔 4년 만에 국내 스타디움에 입성한 엔하이픈이다. 지난 2022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첫 콘서트의 닻을 올렸고, 이후 ‘페이트’로 케이스포돔(KSPO DOME·옛 체조경기장)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이미 일본 돔 투어, 미국 스타디움 공연으로 공력이 채워진 만큼 이번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작아보였다. 이곳은 지난 8월 미국 힙합스타 카녜이 웨스트(칸예 웨스트·Ye)가 예정돼 있지 않던 50여곡 라이브 메들리를 선보이며 콘서트계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후 엔하이픈의 하이브 선배 세븐틴, 브릿팝밴드 ‘콜드플레이’가 같은 곳에서 공연한다.

엔하이픈은 6일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한 차례 더 공연한다. 이어 11월 9~10일 일본 사이타마, 12월 28~29일 후쿠오카, 내년 1월 25~26일 오사카 등 일본 3개 도시에서 ‘워크 더 라인’을 이어간다. K-팝 보이그룹 최단기간 일본 3개 도시 돔 투어(베루나 돔, 미즈호 페이페이 돔 후쿠오카, 교세라 돔 오사카)이자 엔하이픈 자체 최대 규모 공연이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