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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정예화 후퇴시키는 방위사업청, 해체 수준 개혁 필요

입력 | 2024-10-06 09:07:00

중국 악성코드 깔린 경계 작전용 CCTV 납품 승인 등 군사 전문성 결여




방위사업청(방사청)은 2006년 참여정부가 군납 비리 예방과 방위사업 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국방부의 일부 기능을 떼어내 설립한 조직이다. 그 전에 무기 도입 사업은 국방부 조달본부와 각 군 본부가 맡았다. 문민화가 곧 선진화라는 인식에 따라 방사청 출범과 함께 무기 도입에 관한 의사 결정권 및 주요 보직도 민간 공무원들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최근 방사청의 행태를 보노라면 대한민국 국군의 정예화·현대화를 후퇴시키는 측면이 적잖다는 게 필자 견해다.

중국산 부품 나온 軍 CCTV 1300여 대 철거

육군 전방부대 장병들이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뉴스1

최근 한국군의 경계 작전용 CC(폐쇄회로)TV에서 중국산 부품이 발견돼 1300여 대를 긴급 철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당 CCTV의 통제 프로그램에는 영상 데이터를 중국 도메인 주소로 실시간 전송하는 코드가 있었다. CCTV에 악성코드가 심긴 부품이 탑재된 탓이다. 군의 경계 작전용 CCTV에서 이 같은 악성코드나 중국산 부품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병력 자원이 부족해지자 군은 전방 철책 지역과 후방 해안·강안 지역에 경계 작전용 CCTV를 대거 도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년 전후방 각지에서 CCTV 오작동과 결함이 잇따랐다. 일부 CCTV에선 최근 사례처럼 촬영 데이터를 중국 특정 인터넷프로토콜(IP) 주소로 전송하는 부품이나 코드도 여럿 발견됐다. 다시 말해 한국군의 과학화 경계 시스템 전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7월 국방부가 주최한 ‘AI 기반 유무인 복합 경계작전체계 발전’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정부를 향해 질타를 쏟아냈다. CCTV를 활용한 경계 작전과 관련해 의사결정권자와 방사청의 안이함을 지적한 것이다. 특히 기계경비학 전문가들의 비판이 매서웠다. 무인 경계 시스템이란 열원이나 동작을 감지해 침입자를 잡아내는 감지시스템, 감지된 움직임을 CCTV 등으로 확인·식별하는 감시시스템, 이 같은 시스템 전반을 통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통제시스템 등 3가지로 구성된다. “군 당국이 감지시스템과 감시시스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감지시스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게 기계경비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때문에 무인 경계 시스템 구축 사업에서 감지시스템이 누락되거나, 포함되더라도 가장 싼 제품이 도입된다는 것이다. 무인 경계 시스템의 잦은 오경보도 이 같은 점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군 장비 도입을 위한 시험평가에는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도 철저히 검증할 전문성이 필요하다. 현재 방사청에 이 같은 검증 과정에 필요한 전문가가 충분한지 의문이다. 현재 군 장비 도입에선 최소한의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한다고 판단되면 가장 싼값을 부르는 업체가 선정된다. 일부 사업의 경우 전체 평가 항목 가운데 가격에 가장 높은 배점이 부여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한국군에 보급된 장비 상당수가 ‘최저가 낙찰’로 선정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CCTV도 그런 경우다.

군 장비 소프트웨어까지 철저 검증해야 하는데…

방위사업청 로고. 방위사업청 제공

사실 중국산 CCTV를 둘러싼 보안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불거지고 있다. 따라서 방사청은 경계 작전용 CCTV를 도입할 때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모든 면을 세밀하게 검사했어야 한다. 일견 국산 제품처럼 보여도 ‘박스갈이’ 같은 편법을 통해 반입된 중국산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제대로 된 검증 작업은 없었거나 부실하게 진행됐다. ‘최저가’가 가장 중요한 낙찰 요건인 상황에서 각 업체는 가격을 맞추려고 최대한 싼 부품을 찾을 수밖에 없다. 보안 리스크가 큰 중국산 저가 부품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이처럼 업체가 상자나 라벨을 국산으로 바꾸더라도 방사청은 전문성과 사명감을 갖고 이를 잡아내야 한다. 하지만 방사청의 상당수 의사결정권자와 실무자는 군 경험이나 전문성이 부족해 보인다. 이 때문에 자신이 맡은 무기 도입 사업이 왜 추진되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군 출신이라도 자신의 군종·병과에서만 제한적인 전문성을 지닌 이가 상당수다.

한국 공군 F-35A. 뉴스1

‌이외에도 방사청 출범 후 난항 중인 무기 도입 사업이 적잖다. 가령 F-35A 40대 도입으로 끝난 FX(차세대 전투기) 3차 사업을 살펴보자. 방사청 출범 직후인 2007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8조3000억 원 예산을 들여 신형 전투기 60대를 구매하는 게 뼈대였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방사청은 자기네가 구매하는 전투기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못 잡은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3년 방사청이 산출한 60대 도입 비용은 5조9500억 원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7조7800억 원이 든다고 예상했다. 사업 예산은 8조3000억 원까지 늘어났다가 최종적으로 7조4000억 원에 40대를 도입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당시 F-35는 저율초도생산(LRIP) 단계였기 때문에 LRIP 차수별 가격이 달랐다. 게다가 매년 가격이 하락하고 있었다. 다른 전투기 도입 사업처럼 ‘변동가격’으로 계약할 경우 가격 하락 차액을 돌려받거나 차액만큼 전투기를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과거 F-16PB 도입 당시 한국군은 변동가격으로 계약해 차액만큼 기체를 더 받은 바 있다. F-35A의 경우 대당 200억 원, 도합 8000억 원가량 차액이 발생했다. 변동가격으로 계약했다면 F-35A를 6~8대 더 받거나 그만큼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방사청은 ‘고정가격’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한국은 F-35 도입국 중 유일하게 고정가격 계약을 체결한 나라가 됐다. 방사청 관계자들이 F-35의 가격 변동 정보에 무지했고, 협상을 잘해 절충교역으로 군사통신위성까지 얻어냈다는 ‘치적’을 과시하려 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북한은 6월 26일 미사일 탄두 분리 및 유도 조종 시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날로 높아지면서 한국군의 무기체계 정예화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뉴시스

국내 조선업계, 방사청 사업설명회 보이콧

무기 도입 난맥상은 최근에도 문제를 일으켰다. 8월 울산급 호위함 배치(Batch)-Ⅳ 1·2번함 건조 사업 설명회가 조선사들의 보이콧으로 무산됐다. 이미 한 차례 무산된 뒤 재공고를 거쳐 다시 열린 설명회였음에도 국내 조선사 어느 곳도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방사청이 제시한 가격이 황당무계했기 때문이다. 이미 건조된 울산급 배치-Ⅲ는 초도함인 충남함이 2020년 4000억 원에 계약됐다. 지난해 체결된 5·6번함 2척은 7917억 원, 척당 약 4000억 원에 계약이 이뤄졌다. 그런데 그 확대 개량형인 배치-Ⅳ 2척 가격으로 방사청은 7575억 원을 제시했다. 척당 4000억 원이 안 되는 값이다. 해당 전투함의 크기와 성능, 해외 유사 함정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앞선 배치-Ⅲ 사업에선 군함 건조 사업에 처음 뛰어든 한 업체가 첫 실적을 내기 위해서인지 손해를 감수하는 적자 수주 전략을 폈다. 당시 방사청은 이를 ‘예산 절감’ 사례로 자화자찬했다. 방사청은 당시 업체의 적자 수주 사정을 알면서도 이를 기준 삼아 후속 사업 예산 규모를 끌어내렸다. 1척에 4000억 원을 받아도 손해인 군함을 3700억 원에 2척이나 납품하라는 것이다. 조선업계가 이런 사업 조건에 응할 턱이 없다.

무기체계는 일반 공산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또한 그 무기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일선 장병의 생명과 국가 안보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무기체계 도입을 위한 의사결정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최근 전쟁 양상 변화에 대한 통찰력 △해당 무기체계에 대한 높은 이해와 식견 △그 무기로 실제 임무를 수행하는 사용자의 의견을 수치화해 평가 데이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오늘날 방사청의 민간 관료, 특히 의사결정권을 가진 고위 인사 가운데 이런 능력을 두루 갖춘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묻고 싶다.

‘스펙 우수자’ 대신 진짜 전문가 필요

지금 방사청은 해체 수준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게 필자 견해다. 방사청에 필요한 인력은 군사전략과 무기체계에 정통한 진짜 전문가다. 이론만 달달 외우는 명문대·유학파 출신 ‘스펙 우수자’ 대신, 앞으로 십수 년 이상 군문에 남아 있을 군인을 배치해야 한다. 대대적 개혁 없이 방사청을 그대로 둔다면 매년 수십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혈세가 들어가는 무기 획득 사업에서 비합리적 의사결정이 계속될 것이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59호에 실렸습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