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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무기 독가스 ‘뜻밖의 효과’… 항암제-생리대-화장지 개발로[권오상의 전쟁으로 읽는 경제]

입력 | 2024-10-06 22:57:00

1, 2차대전 화학전의 아이러니
1차대전서 염소 등 독가스 사용… 방독면용 섬유질 셀루코튼 생산
전쟁 끝나자 생리대-티슈 소재로… 2차대전 때는 황 겨자 포탄 폭발
시신 부검 후 백혈병 연구 진척… 美 승인 첫 항암제 머스타겐 개발




1943년 독일 공군이 이탈리아 남부 바리를 폭격해 선박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미국 수송선에 실려 있던 황 겨자 포탄이 폭발해 겨자가스 희생자들이 속출했다. 시신 부검 후 백혈병 연구가 진척돼 항암제 머스타겐 개발로 이어졌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943년 12월 2일 오후 7시 반, 폭격기 편대가 바리 상공을 뒤덮었다. 볼프람 폰리히트호펜이 지휘하는 독일 2항공군 소속의 융커88 105대였다. 볼프람은 제1차 세계대전 때 80대를 격추한 독일 공군 에이스, 일명 “붉은 남작”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친척 동생이었다. 만프레트는 1918년 4월 막 전투기 조종사가 된 볼프람을 공중전에서 지키려다 격추돼 전사했다. 바리는 아드리아해에 면한 이탈리아 남쪽의 주인 풀리아의 주도였다. 1943년 7월 이탈리아 왕 빅토르 에마누엘레 3세는 베니토 무솔리니를 감금하고 육군 원수 피에트로 바돌리오를 통해 연합군과 정전 협정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9월 3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11일 영국 1공수사단이 바리에 무혈 입성했다. 이후 바리는 이탈리아 전역의 중요한 보급항이 되었다. 독일 공군의 전력을 얕본 연합군은 폭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바리에서 하역 중이던 연합군 수송선은 모두 32척이었다. 그중 23척이 폭격으로 침몰하고 나머지 9척도 대파되었다. 독일 공군의 피해는 폭격기 한 대 추락이 전부였다. 3주간 아예 쓸 수 없었던 항구는 1944년 2월이 되어서야 정상으로 돌아갔다. 피해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

폭격 직후 바리에는 마늘 혹은 겨자 냄새가 진동했다. 그런 냄새는 전쟁의 역사에서 완전히 낯선 게 아니었다. 폭격이 끝난 후 수백 명이 알 수 없는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미군은 중령 스튜어트 알렉산더를 바리에 급파했다. 다트머스대학을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알렉산더는 화학전 전문가였다. 알렉산더는 환자들의 증상이 1차대전 때 독가스로 사용된 황 겨자(Sulfate Mustard·겨자 가스의 일종)에 노출됐을 때와 비슷하다고 봤다. 불순한 기체 상태의 황 겨자는 마늘 비슷한 냄새가 났다.

1차대전 때 독일은 독가스를 다량으로 썼다. 알고 보면 최초로 사용한 건 프랑스였다. 1914년 8월 전쟁이 시작하되마자 프랑스군은 크실릴브로마이드와 에틸브로모아세테이트가 든 수류탄을 던졌다. 이 기체를 다량 흡입하면 일시적 실명과 호흡 곤란을 겪었다. 이에 노출된 병사는 일정 시간 동안 전투 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프랑수아 외젠 튀르팽은 피크르산 기반의 장약 멜리나이트를 개발한 프랑스의 저명한 화학자였다. 개전 초기 프랑스군의 포격을 받은 독일군은 튀르팽이 개발한 극비의 화학 무기, 튀르피나이트로 공격받았다고 생각했다. 튀르피나이트는 공상의 산물이었지만 어쨌든 화학 강국 독일은 맘먹고 독가스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걸 주도한 사람은 프리츠 하버였다. 하버는 20세기 초반 공기 중의 질소를 가지고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만든 사람이었다. 합성된 암모니아는 비료의 핵심 물질로 쓰일 수 있었다. 분뇨가 비료인 이유는 바로 식물에 질소를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공기 중의 질소를 직접 흡수하지는 못한다. 하버에서 비롯된 질소 비료는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전쟁 때 그가 한 일에도 불구하고 종전 후 노벨 화학상 수상자가 된 이유도 질소 비료의 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 방법은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었다. 1차대전이 시작되자 하버는 바스프의 암모니아 공장에서 질산암모늄이 생산되도록 했다. 1915년 5월부터 질산암모늄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질산암모늄은 폭탄의 주원료였다.

하버가 직접 지휘한 독일의 화학전은 처음부터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1914년 10월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물질이 담긴 포탄 3000발을 영국군에게 쐈지만 장약 폭발 때 그냥 불타버렸다. 1915년 1월에는 프랑스군이 썼던 크실릴브로마이드를 담은 1만8000발을 러시아군에게 쐈으나 날씨가 너무 추워 크실릴브로마이드가 기화되지 않았다. 독가스 공격이 쉽지 않다는 건 영국도 몸으로 겪었다. 1915년 9월 영국군은 프랑스의 로스에서 처음으로 염소 기체를 공격에 사용했다가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바람에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경제는 항상 의도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의도한 건 경제 성장인데 실제로 벌어진 건 자산 버블인 사례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처럼 의도하지 않은 일이 무관해 보이는 일로 인해 생기는 걸 경제학은 넘침(spill-over) 효과라고 부른다. 가령 핵전쟁에 대비하려고 개발한 통신 기술이 오늘날의 인터넷 비즈니스가 된 게 넘침의 예다. 인터넷처럼 군사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 민수용으로 흘러넘친 사례는 적지 않다.

황 겨자도 애초의 의도는 군사용 독가스가 아니었다. 이를 19세기 초에 최초로 합성한 세자르망수에트 데스프레츠의 목표는 질소 비료에 들어가는 암모니아를 합성한 하버와 다르지 않았다. 데스프레츠는 제3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자 메뚜기 떼를 박멸할 살충제를 찾는 과정에서 황 겨자를 합성했다.

황 겨자가 독일군의 본격적인 최초의 독가스는 아니었다. 두 번의 머쓱한 실패를 맛본 후 하버가 고른 물질은 염소였다. 1915년 4월 하버는 벨기에의 이프르에서 약 170t의 기화된 염소를 프랑스군과 캐나다군을 향해 분사했다. 이틀 동안 5000명이 죽고 1만5000명이 다쳤다. 독일군도 자신들이 뿌린 염소로 200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버는 1915년 10월 염소보다 소량으로 효과를 내는 포스겐으로 상파뉴의 프랑스군을 공격했다. 1차대전 독가스 전사자의 85%는 포스겐 때문이었다. 황 겨자는 1917년 7월 이프르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염소와 포스겐 같은 독가스가 무기로 사용되자 방독면이 필수가 되었다. 미국 회사 킴벌리클라크는 1914년 펄프에서 면보다 흡수율이 높은 섬유질, 즉 셀루코튼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킴벌리클라크는 연합군이 사용할 방독면과 붕대용으로 셀루코튼을 대량 생산했다.

1918년 갑자기 전쟁이 끝나자 미군과 적십자는 약 750t의 셀루코튼 구매 주문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막대한 셀루코튼 재고를 떠안게 된 킴벌리클라크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킴벌리클라크는 전선의 간호사들이 보내왔던 감사 편지에서 셀루코튼의 대안적 사용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일회용 생리대였다. 세탁해 다시 쓰는 기존의 면 생리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은 프랑스군 등을 상대로 염소와 포스겐 독가스 살포 공격을 했다. 1917년 1차대전 당시 벨기에의 이프르(Ypres) 지역 참호에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 호주 보병들(왼쪽 사진). 방독면용 섬유질 셀루코튼을 대량 생산했던 미국 회사 킴벌리클라크는 전쟁이 끝나자 셀루코튼을 활용해 일회용 생리대를 개발했다. ‘면과 같은 질감’이라는 뜻의 ‘코텍스’를 상표명으로 내세운 1920년 생리대 신문 광고(오른쪽 사진). 킴벌리클라크는 셀루코튼으로 화장을 지우는 티슈 ‘크리넥스’도 만들어 1924년 출시했다.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

1920년 킴벌리클라크는 “면과 같은 질감”이라는 말을 축약한 코텍스를 상표명으로 삼아 생리대의 광고를 시작했다. 이후 코텍스는 일회용 생리대의 상징과도 같은 브랜드가 되었다. 킴벌리클라크는 원래 방독면 소재였던 셀루코튼의 다른 용처도 찾아냈다. 화장을 지우는 일회용 손수건이었다. 1924년 그렇게 크리넥스는 시장에 데뷔했다. 현재까지도 크리넥스는 화장지의 대명사다.

바리의 황 겨자는 독일 공군의 소행이 아니었다. 바리에 들어와 있던 수송선 존 하비에 2000발의 미군 황 겨자 포탄이 실려 있던 탓이었다. 황 겨자의 총량은 60t이었다. 1944년 2월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존 하비의 황 겨자 포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목적이었을 뿐 선제공격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1차대전 때 연합군의 독가스 공격으로 실명할 뻔했던 아돌프 히틀러는 독가스를 전장에서 쓸 생각은 없었다.

바리 폭격은 의외의 흘러넘침이 있었다. 황 겨자로 죽은 사람들을 부검한 알렉산더는 시체의 백혈구 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걸 발견했다. 알렉산더는 세포가 과잉 생산돼서 문제인 림프종이나 백혈병 같은 병에 황 겨자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황 겨자의 황을 질소로 바꾼 질소 겨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최초의 항암제 머스타겐이 되었다.


권오상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공동대표 ‘전쟁의 경제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