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팔레스타인 무장 정치세력 하마스가 분계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했다. 민간인 약 1200명이 숨졌고, 약 250명이 인질로 끌려갔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하마스 소탕에 나섰고, 서울 면적의 60% 정도인 가자지구 대부분을 장악했다. 몇 차례의 이-하마스 휴전협상이 불발되는 동안 국제사회 관심은 헤즈볼라의 배후인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으로 옮겨간 듯하다. 1년 전 받았던 전쟁의 충격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다 가자지구 사망자가 4만1870명에 이른다는 통계가 전해졌다. 하마스 보건부와 유엔 기구가 파악한 이 숫자는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합친 것인데, 사망자의 30% 이상이 어린이로 파악됐다. 정치와 군인이 시작한 전쟁에서 사회적 약자가 제일 먼저 희생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하마스는 빽빽한 흙벽돌 건물 밑으로 지하 터널을 뚫었고, 그곳에서 무기와 인질을 숨겨놓고 저항해 왔다. 하마스가 자국민을 방패 삼은 곳에 이스라엘의 공격이 집중되면서 희생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인구 215만 명인 가자지구에서 주민의 90%가 피란민이 됐다. 식량, 의료품이 절대 부족하고, 병원과 학교는 제 기능을 잃었다. 구호품 실은 트럭을 차단하는 바람에 외국 공군 수송기가 약품과 밀가루를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하던 장면이 기억에 선명하다. 1년 동안 이 좁은 땅에 평균 3시간에 1번씩 폭격이 감행됐다. 외신 사진 가운데 팔다리에 자신과 가족의 이름을 써넣는 모습이 있다. 폭격으로 신체 일부가 훼손되더라도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난 1년간 이스라엘은 군사작전에선 승리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아랍세계에는 분노와 증오가 쌓여 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대선 철 미국의 리더십 부재를 틈타 더 공세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가깝게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멀리는 이란과 예멘 반군을 상대로 하니, 네 갈래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선 하마스 1인자 제거와 100명 남짓 남은 이스라엘 인질의 석방을 손에 쥐어야 멈출 듯하다. 하마스로선 응할 수 없는 조건이니, 전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는 동안 정치와 거리가 먼 이들의 수난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