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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민우]老老갈등 사각지대… 시골마을 경로당

입력 | 2024-10-07 23:12:00

박민우 사회부 차장 


2년 전 가을, 스웨덴의 연금개혁 사례를 취재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스웨덴 연금 수급자들을 만나러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서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그네스타의 노인회관 ‘파워후세트’를 찾아갔다. 경로당에 가보는 건 30여 년 만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이 맞벌이를 한 탓에 초등학교를 마치면 늘 경로당에 있는 할머니에게 가서 저녁때까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민화투나 점당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며 소일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봤다. 옆에서 종일 할머니가 화투 놀이하는 걸 지켜보는 게 어린 마음엔 지겹기도 했다.

노인 복지 강국이라는 스웨덴의 경로당은 무엇이 다를까 궁금했다.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건 똑같았지만 손에 든 건 화투장이 아니라 뜨개바늘이었다. 시설도 훨씬 크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경로당 주변 1km짜리 산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매주 금요일에는 디지털로부터 격리된 노인들에게 모바일과 컴퓨터 교육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경로당 운영 주체였다. 파워후세트는 스웨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노인 조직인 스웨덴연금수급자단체(PRO)와 스웨덴노인협회(SPF)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PRO는 사회민주당 계열의 비영리조직이고, SPF는 사민당을 제외한 연합 조직이다.

연금 수급자 단체는 경로당만 운영하는 게 아니었다. PRO는 1986년 여행사인 ‘그랜드 투어’를 설립해 회원 연령대에 맞춘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성인 평생교육 시설인 공민학교(folkh¨Ogskola)도 운영한다. 심지어 복권 사업도 하고 있다.

스웨덴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연금 수급자 단체가 5곳이나 있다. 파워후세트에서 만난 마가레타 베리달 PRO 그네스타 지부 대표(72)는 “연금 수급자 단체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르지만 우리의 목적은 노년의 외로움과 싸우는 것”이라며 “노인들의 활동과 만남을 주선하고 갈등은 중재하면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한다”고 설명했다.

불현듯 스웨덴 경로당에서 취재한 기억이 떠오른 건 올해 초복인 7월 15일 경북 봉화의 한 경로당에서 발생한 ‘농약 커피’ 사건의 씁쓸한 뒷맛 때문일 거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숨진 80대 여성 A 씨를 피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지난달 30일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은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경로당에서 주로 화투 놀이를 했는데 A 씨와 다른 회원들 사이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인했다”고 했다.

내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는데 한국의 경로당 문화는 수십 년째 화투 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인 간 세대 갈등이 커지고 고독과 빈곤,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인들이 늘면서 사소한 갈등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5년 7월 경북 상주시 ‘농약 사이다’, 2016년 청송군 ‘농약 소주’, 2018년 4월 포항시 ‘농약 고등어탕’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의 경로당 6만8000여 곳의 운영을 사실상 독점하는 대한노인회가 초고령사회 노인들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도 노인 공동체 서비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은 무엇인지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박민우 사회부 차장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