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인 김건희 여사의 손을 꼭 잡고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동남아 3개국 순방 외교. 체코 원전 외교를 다녀온 지 보름 만이다. 해외 방문 때마다 매번 동부인해야 되나 싶기도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검찰이 빠르면 이번 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내릴 전망이 분분해서다.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6일(현지시각)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뉴시스.
윤 대통령 내외 부재중 검찰이 김 여사를 재판에 넘길 리 없다. 11일 대통령 내외가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불기소 처분을 내려 최대한 대통령과 김 여사의 면을 지켜준다는 게 검찰의 졸렬한 계산이 아닌가 싶다.
●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던 윤 대통령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뽑히기 전인 2021년 10월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반려견한테 사과를 주는 ‘개사과’ 사진이 비난을 받으면서 김 여사가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낳았을 때다. “선거라는 게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느냐”며 “그런데 제 처는 다른 후보 가족들처럼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아서 그런 오해를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윤 대통령은 부인을 잘 모르는 듯하다. 어쩌면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김 여사가 하는 말은 무조건 옳고, 뭔 일을 해도 예뻐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수 국민이 익히 알게 됐듯, 김 여사는 선거에 적극적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2022년 초 대선 과정 중 공개된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와의 통화를 들여다보면, 선거캠프에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김 여사였다.
2021년 7월 통화가 시작될 때부터 김 여사는 선거를 얘기했다. “동생이 좀 와~ (선거)캠프에서. 조직, 블랙 조직으로 좀 뛰어 봐봐” 도움을 청하면서 오빠가 있는 캠프에 오면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으로 7일 SGI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출신 김대남과 통화를 공개한 좌파 유투버가 바로 이명수다. 3년 전 김 여사는 이명수에게 “하여튼 (윤석열 비판은) 반응 안 좋다고, 슬쩍 한번 해봐 봐.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후원금)은 지금 더 많이 나올 거야” 코치를 하기도 했다(김대남이 이명수에게 “한동훈을 치면 여사가 좋아할 것”이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느낌?).
대통령 자리도 김 여사는 패밀리 비즈니스로 알고 있는 게 아닌지, 더럭 겁이 난다. 대선 전 이명수와의 통화에서 김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완전히…(웃음)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 디올백 진상 논란의 재미 목사 최재영에게 이랬던 건 너무나 당연했던 셈이다.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까…(중략) 막상 대통령이 되면은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 생각을 먼저 하게 돼 있어요. 이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심지어 명태균이라는 정치브로커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참여를 ‘결정권자’에게 제안받았다고 7일 자 동아일보에 말했는데 이날 저녁 채널A엔 직접 김 여사가 전화를 걸어와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 정부의 결정권자는 김 여사라는 의미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는 김건희 여사의 모습. 동아일보DB.
대통령은 김건희가 아니라고 바로잡아줄 사람은 단 한 사람, 윤 대통령밖에 없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그걸 못한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안다는 게 또 비극이다. 윤 대통령이 어려워함직한 선배 법조인들이 김 여사에 관해 조언하면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라며 말을 끊는다지 않던가.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고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활동을 자제할 것 같지도 않다. 7일 한 언론에 공개된 4월 총선 직후 김대남의 통화에 따르면, 현재 대통령실 권력 구조는 김 여사가 제일 세고 그 밑에 젊은 십상시 몇 명이 있다는 거다. “여사가 자기보다 어린 애들을 갖고 쥐었다 폈다 하며 시켜먹는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냥 다 얼굴마담”이라고 했다. 용산에서조차 대통령에 대해선 X통으로 치면서 나랏일은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은 김 여사가 40대 행정관이나 거느리고 해먹는다고 본다면, 심각하다. 그래서 ‘심우정 검찰’이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9월 26일 대검찰청을 나서는 모습. 심 총장은 이날 김건희 여사의 처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이대로 가다간 야권과 좌파 단체에서 별러대는 국정농단 의혹으로, 탄핵몰이로 휩쓸려 갈 우려가 있다. 차라리 검찰총장이 도이치모터스 사건 김 여사에 대해 엄정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사태의 흐름을 끊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부인에게 말 못 하는 처지의 대통령을 살리는 것은 물론 나라가 미친 혼란에 빠지는 파국도 막는 길이다.
안다. 4년 전인 2020년 10월 19일 문재인 정권 시절,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도이치모터스 수사에서 배제했다는 것을. 김 여사가 윤 총장의 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심우정은 김 여사와 가족이 아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권이 바뀌고 총장이 바뀌고 다 바뀐 상태에서 (수사지휘권 배제가) 그대로 적용되는 게 맞느냐”고 했다. 수사지휘권 배제의 법적효력이 언제까지 유효한지 명문화돼있지 않다는 거다.
심지어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복귀한 추미애도 “윤석열 정권이 갑자기 4년 전 법무부 장관으로서 내린 저의 (총장 수사지휘권 박탈) 지시를 금쪽으로 여긴다. 어찌 그리 궁색하냐”고 조롱하듯 지적했다. 심우정이 윤 대통령과 가까운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지휘권 복원을 요청해봤자 소용없다. 윤 대통령과 김주현 민정수석이 특수통 아닌 기획통 총장을 찾은 것도 김 여사 수사는 엄두도 못 낼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일 터다.
● 대한민국 검찰을 주저앉힐 텐가
바로 이 허(虛)를 찌르는 데 심우정 존재의 묘미가 있다. 훗날 오늘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심우정 검찰이 대통령 부인을 기소해 법의 심판대에 세운 것이 제2의 6·29선언으로 평가될 수도 있는 일이다. 권력 앞에 절절매는 검찰을 구하고, 마누라 앞에 절절매는 대통령을 구하고, 유권무죄(有勸無罪)에 절망한 민심을 구할 수 있어서다.
2019년 여름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전격 수사하기 전,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석에서 ‘이러다가 (문재인) 정부가 무너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다. 조국 수사를 문 정권 사람들은 ‘검찰 쿠데타’라고 주장하지만 문재인의 ‘우리 총장님’이었던 윤석열은 분명, 조국을 지키다 보면 문 정부에 타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심우정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과 정부를 지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총대를 메야 할 때가 지금이다. 영부인 치마폭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거래로 4000만 원가량 평가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지만, 아니었다. 김 여사와 그의 모친이 23억 원의 이득을 봤다는 검찰 의견서를 비롯해 김 여사 혐의는 차고 넘친다. 검찰 시절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검찰을 대단히 사랑한다”고 했던 윤 대통령이 지금 대한민국 검찰을 꿀리고, 죽이고 있는 셈이다. 검찰이 사실상 문을 닫고 공소청으로 바뀌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 심대평의 아들 심우정도 여기 같이 설 텐가.
● 심우정이 나서야 대통령도 떳떳해진다
윤 대통령이 두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국민의힘이 다시 무력화시킨 ‘김 여사 특검법’ 수사 대상이 무려 8가지다. 기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포함해 디올백 수수 의혹,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22대 총선 공천 개입 의혹까지 김 여사의 입김과 활약에 따라 수사 대상은 자꾸 확대됐다.
2020년 4월 최강욱 등의 고발로 시작된 수사가 추상같이 이뤄졌다면, 김 여사는 대한민국 검찰 무서운 줄 깨닫고 오늘날 이 지경까지 이르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니 명태균이라는 다수 국민에겐 듣보잡 같은 ‘책사’가 튀어나와 자기가 정권을 만들었느니,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한 달이면 (윤 대통령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는 흰소리나 하는 것이다.
김 여사가 심우정 검찰 앞에 소환되는 날,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모질지 못한 우리 국민은 분명 김 여사를 다시 돌아본다(재판받고 유죄 선고를 받아도 실형을 살 리도 없다). 그래야 윤 대통령도 국민 앞에 떳떳해지고, 지지율이 단박에 획기적으로 올라가면서 국정 동력도 새롭게 확보할 수 있다.
심우정이 움직이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바뀌지 않는다. 김 여사는 더욱 세상 무서운 게 없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달랑 불기소 처분을 내려 사람한테 충성하는 비열함을 보인다면, 국민 신뢰는 땅에 떨어져 개도 안 주워갈 게 분명하다. 야당에서 ‘더 쎈 특검법’이 나오고 윤 대통령이 이해충돌 문제도 외면한 채 또 거부권을 날리면, 그때는 민심이 뒤집힐지도 모를 일이다.
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