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간판 보면 잘 몰라 불편” 식당 메뉴판에 영어-일어만 표기도 ‘한글 병기 안하면 불법’ 대부분 몰라 그나마 3층이하 건물은 적용 안돼
“여기가 커피집인가요? 겉모습은 금은방 같기도 하고.”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대청역 일대를 걷던 이범수 씨(73)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시선은 프랑스어로 적힌 한 카페 간판에 한참 머물렀다. 어디에도 무슨 가게인지 한글 설명은 없었다. 이 씨는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영어 등 외국어를 잘 모른다. 그는 이 골목에 즐비한 ‘외국어 간판’을 볼 때마다 막막함을 느낀다. 원래 강원 원주시에 살다가 3년 전 서울로 이사 온 그는 “반찬가게를 찾아갈 때도 간판 앞에서 멈칫하기 일쑤”라고 토로했다.
● 외국어 간판 앞에서 고령층 ‘갸웃’
동아일보 취재팀이 6,7일 이틀간 서울과 경기 번화가 일대를 70대 노인들과 동행하는 동안 한글 없이 외국어로만 표기한 간판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같은 날 강남역 일대도 마찬가지였다. 강남역 11번 출구에서 나오자마자 근처 상점가에는 K-MECCA, DESIGN SKIN, LLOYD, BRAND MARKET, HOLLYS 등 영어 간판이 가득했다. 근처에서 만난 김영균 씨(74)는 “뭘 파는 가게인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글날을 이틀 앞둔 7일 오후 경기 수원시의 한 붕어빵 가게 앞에서 강혜순 씨(78) 등 70대 노인들이 영어 간판과 일본어 메뉴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법은 유명무실, 지자체는 단속 손 놔
지방자치단체도 단속 의지가 없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그 많은 가게 간판을 일일이 다 단속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어 간판을 내건 상인 대부분은 “문제가 되는지 몰랐다”, “관련 법이 있는지 몰랐다”고 밝혔다. 강남역 인근 한 소품점 직원은 “외국인 고객이 많다 보니 영문 간판을 선택했는데 법에 한글을 병기하라는 규정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규제 적용 범위를 모든 간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법 적용 대상을 늘리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간판은 거리에 정보를 표현하는 공적 의미도 갖기 때문에 한글을 병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최원영 기자 o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