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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 청년에서 괴물로 변한 금발의 ‘젊은 트럼프’…美대선 앞두고 개봉한 영화 ‘어프렌티스’

입력 | 2024-10-09 14:55:00


영화 속 젊은 트럼프와 로이 콘.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 속 젊은 트럼프. 누리픽쳐스 제공


1980년대 미국 뉴욕. 금발을 귀까지 덮을 듯 길러 넘기고 다니는 남자가 거리를 쏘다닌다. 언제나 화려한 넥타이에 고급 정장을 갖춰 입어 수려한 외모가 돋보인다. 조금 통이 큰 바지 덕에 긴 다리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멋쟁이 뉴욕 신사라 할 만하다.

영화 속 젊은 트럼프와 로이 콘. 누리픽쳐스 제공


하지만 남자는 잔혹하기 그지없다. 임차인들에겐 무자비하게 임대료를 징수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협박한다. 돈을 벌기 위해선 어떤 짓도 망설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에겐 ‘악마의 변호사’라 불리는 파트너가 있다. 파트너는 남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범죄까지 저지른다. 미국에서 11일(현지 시간), 한국에서 23일 개봉하는 젊은 시절 도널드 트럼프와 그의 변호사 로이 콘을 다룬 전기 영화 ‘어프렌티스’ 내용이다.

실제 젊은 트럼프와 로이 콘. 미국 MSNBC 방송 유튜브 캡쳐

실제 젊은 트럼프와 로이 콘. 미국 MSNBC 방송 유튜브 캡쳐


다음달 5일 열리는 미국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폭로한 영화가 공개된다. 올 5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개 직후 8분 동안 기립 박수를 받았지만, 트럼프 캠프가 “거짓으로 가득한 쓰레기”라고 반발하며 소송을 예고하며 화제에 휩싸인 작품. 영화의 제작비를 낸 투자사가 뒤늦게 비판적인 내용이 가득한 영화라는 사실을 알고 개봉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투자 지분을 총괄 프로듀서가 인수하며 간신히 개봉에 성공했다. “미래에 대한 예언적 메아리”(가디언), “논쟁적인 영화”(워싱턴포스트)이란 평가를 받으며 외신에서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젊은 트럼프. 누리픽쳐스 제공

영화는 30, 40대 시절의 트럼프를 사실적으로 살린 미덕을 지녔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년)에서 윈터 솔져 역을 맡았던 루마니아 출신 배우 세바스찬 스탠이 트럼프 역을 맡았다. 스탠은 체중을 7kg 찌우고 트럼프 특유의 금발을 길렀다.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턱을 쑥 내밀며 자신의 힘을 강조하는 표정, 목적지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는 특유의 걸음걸이까지 젊은 날의 트럼프를 극적으로 살렸다.

실제 젊은 트럼프와 로이 콘. 미국 MSNBC 방송 유튜브 캡쳐

트럼프가 로이 콘(제레미 스트롱)과 가까워지는 과정도 볼거리다. 처음 트럼프는 술을 마시지 않지만 콘을 만나며 보드카를 마신다. ‘무조건 상대를 공격하라’, ‘모든 의혹을 부정하라’,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고 강조하는 로이 콘을 스승으로 삼아 트럼프는 야망 넘치는 사내에서 괴물로 변하기 시작한다. 영화 제목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수습생)는 트럼프가 2004~2017년 진행한 리얼리티 TV 쇼 이름으로 ‘수습생’이던 트럼프가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대미는 트럼프가 자신의 첫째 부인인 이바나와 말싸움을 벌이다 성폭행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서 이 장면은 20초 정도 건조하게 그려지고 노출 등 선정적인 연출은 배제했다. 다만 성폭행당하는 이바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한때 이바나를 사랑했던 트럼프가 얼마나 잔혹한 인물로 변해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실제로 이바나는 1990년 이혼 소송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가 1993년 철회했고 2022년 사망했다. 영화 후반부엔 트럼프가 비만을 없애려 지방 흡입, 탈모를 위해 두피 시술을 하는 장면도 담겼다. 마취에 취한 채 시술을 받는 트럼프의 모습을 카메라가 비추는 장면을 트럼프가 본다면 대선 전 꽤나 애가 탈 것 같다.

1987년 출간된 자서전 ‘거래의 기술’ 속 트럼프 모습. 아마존북스 캡쳐



다만 트럼프에 대해 마냥 비판적인 영화라 볼 순 없다. 트럼프가 콘을 만나 변화했다는 서사 자체는 트럼프에게 변명거리를 안겨주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 스릴러물에 기대하는 극적인 요소가 없다는 점도 아쉽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