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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 굴착기가 20초 만에 우수수… ‘도로위 지뢰’ 잡는다

입력 | 2024-10-10 03:00:00

서울시, 이달 말까지 은행 채취 총력
진동 수확기-그물망 등 이용해 수확
지난해 암수 접목 시도는 추위로 난관
수나무로 바꿔 심은 강북구는 암나무 ‘0’



4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한 도로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진동 수확기로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털어내고 있다. 서울시는 가을마다 사방에 떨어진 은행으로 인한 악취, 보행 불편 등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을 운영한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타타타타타….’

8일 오전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한 사거리. 집게가 달린 굴착기가 도로변의 나무 근처로 다가가더니 줄기를 잡고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는 가지에서 샛노란 열매가 비 오듯 쏟아졌다. 약 20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식간에 바닥이 노랗게 물들고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나무의 떨림이 멈추자 싸리 빗자루와 포대를 든 구청 직원 7명이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쓸어 담았다.

● 이달 말까지 도로변 은행 털어

서울시가 가을철을 맞아 ‘은행 털기’에 나섰다. 무르익은 열매가 떨어지고 으깨져 악취를 풍기기 전에 미리 채취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는 지난달부터 25개 자치구에서 ‘은행 열매 채취 기동반’을 편성하고, 불편 민원을 신속하게 해결하는 ‘은행 열매 수거 즉시 처리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은행나무 열매는 익어가는 순서가 달라 같은 나무라도 한 번에 모든 열매를 채취할 수 없다. 나무가 클수록 2, 3회에 걸쳐 채취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달 말까지 은행나무 열매 완전 채취를 목표로 수회에 걸쳐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날 은행을 수확한 강동구는 2022년 시비 1980만 원을 들여 ‘진동 수확기’를 구입한 뒤 관내 은행나무의 약 98%를 이 장비를 이용해 턴다. 기계는 집게로 나무줄기를 잡고 1분에 600∼800회를 진동하는데, 이렇게 채취하는 은행 열매가 연간 3600kg에 달한다. 채취한 열매는 매년 11월 중순 전량 폐기한다. 나무가 약하거나 수령이 오래된 경우에는 줄기에 그물망을 설치해 떨어지는 열매를 거둔다.

서울시는 암나무와 수나무를 접목하는 실험도 시도했다. 은행나무는 암나무에 열매가 열리고 수나무에는 열리지 않는다. 암나무의 기존 가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수나무 가지를 접목하면 그 나뭇가지에서는 열매가 열리지 않게 된다. 지난해 3월 국립산림과학원 전문가의 지도로 은행나무 암나무 2그루에 수나무를 접목한 결과 1그루 접목에 성공해 2개의 가지가 정상적으로 자랐다. 그러나 겨울을 지나며 성공했던 2개의 가지마저 추위로 말라 죽은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접목을 한 후 기온이 떨어져 눈의 생장이 원활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설명했다.

● 시내 은행 가로수 24%가 암나무

은행의 악취는 껍질에 포함된 ‘비오볼’과 ‘은행산’이라는 물질에서 나는데 씨앗을 곤충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은행나무로선 생존법이지만 시민에겐 불청객인 가을철 악취의 원인을 완전히 뿌리 뽑아 버린 자치구도 있다.

강북구는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 중 유일하게 은행나무 암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다. 관내 은행 가로수 2873그루가 모두 수나무다. 5년 전만 해도 1053그루의 암나무가 있었지만, 이듬해부터 2년 동안 모든 암나무를 수나무로 바꿔 심었다. 구 관계자는 “암수 구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모두 수나무로 바꾸자 민원이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25개 자치구 중 은행나무 암나무 수량이 가장 많은 곳은 송파구(2864그루)다. 이어 강남구(1977그루), 강동구(1809그루)가 뒤를 잇는다. 서울 전체로는 전체 은행 가로수 10만2794그루 중 24%인 2만5105그루가 암나무다. 과거에는 암나무의 은행 열매를 사람이 장대로 직접 털어야 했으나 2021년부터 진동 수확기와 그물망 등 채취 도구를 도입하며 악취 관련 민원도 줄어들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수확한 은행 열매를 시 보건환경연구원 강북농수산물검사소에서 중금속과 잔류농약 검사를 거친 뒤 경로당, 사회복지시설 등 필요 기관에 기증하려 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안전성이 확인됐음에도 가로수에 달려 있던 은행이라는 이유로 받는 곳이 많지 않아 올해 수확한 은행은 아직 기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