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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은주]성과지표 매달리는 대학들, 숫자놀음의 덫에

입력 | 2024-10-09 23:12:00

“글로벌 경쟁력 잣대” 외국인 교수 수 등 평가
국제 공동연구 실적을 중요지표로 강조-장려
본질과 멀어지는 ‘성과지표의 배신’ 경계해야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미국의 역사학자 제리 멀러는 우리나라에서 ‘성과지표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원제 ‘The Tyranny of Metrics’)에서 계량적 성과지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매사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데 집중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보다 쉽게 측정 가능한 것에 매몰되기 쉽고, 이는 본질과 무관한 겉핥기식 개선을 우선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성과지표 자체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에도, 사람들이 애초에 설정했던 목적을 도외시한 채 실제 성과 개선보다 지표 달성에만 목을 매는 경우 사기 저하, 비효율, 심지어는 부패를 유발할 수 있다. 쥐가 들끓어 골치를 앓던 시장이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가져 오면 상금을 준다고 하자 시민들이 꼬리만 자르고 쥐를 놓아주어 더 많은 쥐가 번식하도록 방치하거나, 아예 쥐 사육 농장을 만들어 꼬리를 갖다 바치고 상금을 타 갔던 1902년 베트남 하노이의 상황이 바로 그런 예다.

대학 사회에서 ‘국제화’가 절체절명의 과제로 거론되던 때가 있었다. 교육부가 수행하는 다양한 대학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해당 학과가 교육과 연구에 있어 얼마나 ‘국제화’돼 있고 또 ‘국제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를 입증해야 했는데, 이때 평가지표로 통용된 것이 주로 재직 중인 외국인 교수 수, 등록 외국인 학생 수, 외국어로 진행되는 강좌 수, 국제 공동연구 성과, 국제학술행사 개최 등이었다.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 입장에서는 평가의 공정성, 객관성, 신뢰성을 담보하고, 피 같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사업의 성과를 엄정하게 관리하기 위해 평가지표를 설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할 충분한 이유, 아니 의무가 있다. 하지만 성과지표가 원래의 목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성과지표를 높이는 것 자체가 목표로 변질되는 경우 목표 달성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예컨대 외국인 교수를 충원하면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서류상 국적만 외국인인 교수를 채용한다(오해가 없길 바란다. 이분들 중에는 국적과 무관하게 충분히 임용되고도 남을 뛰어난 분들도 많이 있다). 문제는 애초에 외국인 교원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국제화’가 학문적·문화적 다양성 등과 무관하게 국적 요건만으로 자동 충족되는 것인지에 있다. 국제학술 행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최소 4개국 이상에서 참석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만과 중국을 2개국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은지 문의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유행이 지난 ‘국제화’라는 구호 대신 연구개발(R&D)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예전에 비해 정량적 지표보다 전문가의 정성적 판단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평가의 중심이 옮겨졌지만 여전히 국제 공동연구를 중요한 지표로 강조하고 장려한다. 그런데 국내 대학의 연구자가 단독으로, 혹은 지도 학생들과 함께 세계 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면 이는 더 칭찬받아 마땅한 일 아닌가. 마치 기우는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바리바리 혼수를 해 보내듯 잘나가는 해외 연구자 혹은 연구기관에 거액의 연구비를 별다른 조건 없이 제공하면서 양해각서를 맺고, 이를 국제 공동연구 실적으로 내세운다면 이러한 활동이 과연 대한민국 학계의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물론 우리가 아직 세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 그래서 수업료를 지불하더라도 가서 보고 배워 와야 할 영역도 있지만, 이를 허울 좋은 공동연구 실적으로 포장할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국제 학술 교류라는 명목으로 해외 저명 학자 혹은 석학 특별 강연에 모시는 연구자들이 과연 내국인 연구자들에 비해 더 가치 있는 학술적 경험을 제공하는지, 아니면 순회공연 하듯 한번 들렀다 가는 건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겠는가.

심리학자 캠벨은 계량적 지표가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많이 활용될수록 그 지표를 통해 관리하고자 했던 과정을 왜곡하거나 오염시킬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했다. 온라인 리뷰와 별점을 보고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시켜 먹을까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식당 주인들이 음식의 맛이나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보다 리뷰와 별점 알바를 고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어느 광고에서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고 했던가. 마찬가지로 성과지표는 배신하지 않는다. 성과지표를 가지고 노는(gaming)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이은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