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다. 그림 속 임산부가 입은 드레스 말이다. 선명한 붉은색 위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왼손으로 불룩 나온 배를 보호하고, 오른손으로는 하얀 천을 잡은 그녀, 고급스러운 복장과 인테리어로 보아 상류층 여성으로 보인다.
이 그림은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아르구노프가 그린 ‘프라스코비야 코발료바의 초상’(1803년·사진)이다. 임신한 귀부인의 모습을 그린 것 같지만 사실 모델의 신분은 농노였다. 코발료바는 1768년 셰레메테프 가문 소속 농노의 딸로 태어났다. 이 가문은 당시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귀족 가문으로 소유한 농노가 30만 명에 달했다.
표트르 셰레메테프 백작과 그의 아들 니콜라이는 예술에 진심이었다. 부자는 극장과 오페라단을 세우고 재능 있는 농노들을 발굴해 교육시켰다. 미술에 소질이 있으면 화가로 활동하게 했다. 이 그림을 그린 아르구노프도 이 가문에 속한 농노 화가였다.
한편 니콜라이 백작과는 연인 사이가 됐다. 신분 차이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이 컸다. 1798년 니콜라이는 그녀를 농노에서 해방시키고, 3년 후 결혼했다.
행복도 잠시, 35세 때 코발료바는 아들을 낳았지만 출산 후 3주 만에 사망했다. 이 그림은 그녀 사후에 그려졌다. 아내를 기리기 위해 남편이 의뢰한 것이다. 그림 속 만삭의 아내는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이고, 남편은 흉상이 되어 아내 곁을 지키고 있다. 영원히 함께하고픈 남편의 심정을 대변하는 초상화인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