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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휩쓰는 AI, 물리학상 이어 화학상까지…‘알파고 아버지’ 50년 난제 해결

입력 | 2024-10-09 21:32:00

데이비드 베이커, 데미스 허사비스, 존 점퍼


인공지능(AI)이 노벨상을 휩쓸고 있다.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의 주인공도 AI였다. 기초과학에서도 AI의 공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과 관련된 인물이 3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점도 이변으로 꼽힌다.

9일(현지 시간) 노벨위원회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디렉터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베이커 교수는 단백질 설계 모델을 만든 공로로, 구글 딥마인드 팀은 AI로 수년이 걸리던 단백질 구조 파악을 몇 시간으로 줄여 지각변동을 일으킨 ‘알파폴드’ 개발 공로를 인정받았다. 허사비스 CEO는 이세돌 9단을 꺾은 ‘알파고’의 개발자이기도 하다. 노벨위원회는 “단백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려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한다”며 “올해 수상자들은 여기에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고 평가했다.

전날에도 존 홉필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가 머신러닝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AI의 대부 힌턴 교수는 구글의 AI 조직인 구글 브레인 출신이다. 노벨위원회는 전날 “컴퓨터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줬다”며 수상 배경을 밝혔는데, 이날도 생화학 난제를 푸는 데 기여한 AI의 과학적 공로를 높게 평가했다.

노벨 화학상 베이커-허사비스-점퍼 3인 공동 수상

“50년 난제를 해결했다.”

9일(현지 시간) 노벨위원회는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딥마인드 디렉터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이같이 밝혔다.

위원회는 “베이커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단백질을 설계하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성공했고, 허사비스와 점퍼는 단백질의 복잡한 구조를 예측하는 난제를 해결하는 인공지능(AI) 알파폴드 모델을 개발해 2억 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전날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화학상에서도 AI 연구자가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AI 기술의 영향력과 잠재력이 보수적인 과학계에서도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석차옥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양자역학이 물리학과 화학, 공학에서 많은 파급효과를 가져왔듯 AI도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수학이 자연의 언어이고 물리학이 수식을 통해 현상을 이해하는 개념이었다면, 신경망과 같은 열린 수식을 통해 기초과학을 풀 수 있음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 생명의 근간 단백질 구조로 신약 개발

AI를 통해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고 설계한 과학자들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이들이 단백질의 비밀을 풀어 신약 개발 등 인류의 발전과 관련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2만여 개의 단백질 분자는 모든 생명 현상에 관여한다. 20종의 아미노산이 복잡한 사슬 구조로 연결돼 있는 데다 서로 접힌 3차원으로 돼 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는 해당 단백질의 기능과 생체 내 역할을 결정하기 때문에 신약 개발과 질병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베이커 교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단백질을 직접 설계해 만드는 연구를 통해 업적을 쌓아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던 석학이다. 단백질 설계를 통해 신약이나 효소를 만들어 내고, 단백질이 어떻게 생겼을지를 예측하는 연구에 매진해 왔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화로 연결된 베이커 교수는 “자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옆에서 아내가 너무 크게 소리쳐 전화 내용을 제대로 못 들었다”며 웃었다. 베이커 교수는 최신 AI 기술도 받아들여 2021년 당시 백민경 박사후연구원(현 서울대 교수)과 함께 수 분~수 시간 내에 단백질 구조를 해독하는 AI ‘로제타폴드’를 개발한 바 있다.

베이커 교수는 이날 간담회에서 “오랫동안 단백질 설계를 연구하고, (공동 수상자인) 허사비스 CEO, 점퍼 디렉터의 성과를 보며 AI의 힘을 깨달았다”며 “앞으로 AI가 접목된 단백질 디자인 분야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된다”고 밝혔다.

● 체스 신동 게임광, AI로 생명의 비밀까지

허사비스 CEO와 점퍼 디렉터가 개발한 AI ‘알파폴드’도 생화학계의 난제였던 ‘단백질 폴드(접힘)’ 문제 등을 해결하며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혁명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로부터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기술로 2020년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인 ‘CASP14’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둬 과학계를 흔들었다. 단백질 구조 연구는 결정(crystal)으로 만들고 X선 회절 영상을 분석하는 등 수개월에서 수년 동안 일일이 실험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를 AI로 수시간 만에 가능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확도까지 높였다는 평가다.

이미 AI 업계의 주요 인물로 유명한 허사비스는 화학자가 아닌 컴퓨터 과학자이자 신경과학자다. 영국 출신으로 4세부터 체스 신동으로 15세 때 고교 과정을 마쳤고 17세에 수백만 개의 판매량을 올린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를 개발한 천재 게임광이다. 게임을 좋아했기에 바둑이나 비디오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컴퓨터, AI에 눈을 돌리며 업계의 판도를 바꿔놨다. 전날 물리학상을 받은 힌턴 교수와도 교류해 왔으며 베이커 교수의 ‘로제타폴드’도 알파폴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허사비스와 점퍼가 알파폴드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AI, 컴퓨터 생물학, 그리고 과학 자체에 있어 기념비적인 업적”이라고 공식 입장을 냈다.

한편 수상자들은 메달, 증서와 함께 상금 1100만 스웨덴 크로나(약 14억3000만 원)를 나눠 갖는다. 베이커 교수가 전체 상금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은 허사비스 CEO와 점퍼 연구원이 다시 반씩 나눠 받는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