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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연명치료 안 받겠다” 제도 시행 5년 만에 244만 명 등록

입력 | 2024-10-10 23:21:00


사람이 누리는 오복(五福) 중 하나가 고종명(考終命), 제명대로 살다 편히 죽는 것이다. 의술의 발달로 장수하기는 쉬운데 편히 죽는 건 어려워졌다. 대부분 의료장비 주렁주렁 달고 차가운 침상에서 임종을 맞는다. 고통스럽고 무의미하게 사느니 평온한 죽음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연명치료 중단 환자가 7만720명으로 관련 법(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첫해인 2018년의 2.2배로 집계됐다. 전체 사망자 5명 중 1명은 연명치료를 중단한 경우다.

▷환자의 권리엔 의사의 치료에 동의할 권리뿐만 아니라 치료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치료 거부권을 헌법상 자기 결정권에 근거한 권리로 인정해왔다. 대표적인 판례가 미국의 1976년 ‘퀸란 판결’이다. 식물인간 상태인 아이(캐런 퀸란)의 부모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했다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헌법상 프라이버시권은 치료 거부권을 포함한다’고 판결했다. 세계의사회는 2015년 발표한 ‘의료윤리설명서’에서 치료 거부로 사망에 이르게 될 경우라도 치료 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대만은 2000년 말기 환자의 연명치료 거부권을 법제화했다. 법 제정 이전에도 ‘마지막 한 숨은 남겨 집으로 돌아가 죽는 것이 좋다’는 전통에 따라 임종 직전 퇴원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일본은 2007년 말기 환자의 연명치료 거부를 허용하기 시작했는데 특이하게도 법이 아니라 후생노동성 가이드라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으로 세세하게 규정하면 의사들이 소송 부담에 소극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게 돼 환자의 치료 거부권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은 치료 거부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는 나라다. 의사 2명이 ‘임종 과정’에 들어갔다고 판단하고, 환자의 중단 의사가 확인돼야 한다.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도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중단 등으로 방법이 제한적이다. 임종 시점을 며칠 앞당기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말기 환자도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2022년 ‘국민신문고’가 6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말기 환자나 그 이전 환자에게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66%였다.

▷연명치료 거부를 비판하는 이들은 삶이란 주어진 대로 끝까지 살아내야 하는 의무라고 한다. 치료 거부권을 요구하는 쪽에선 삶은 권리이며 아프거나 무의식 상태에선 인생을 향유할 수 없으니 존엄한 죽음을 허용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건강할 때 연명치료 중단 의향서를 미리 등록해 둔 사람이 법 시행 5년 만에 244만 명을 넘어섰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