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평화상 이어 韓 두번째 노벨상… 亞작가 5번째 문학상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등 받아… 2019년 인촌상 수상자 “놀랐고 영광, 한국독자-동료 작가들에 좋은 소식이었으면” 스웨덴 한림원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
한국 첫 노벨 문학상 작가가 탄생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을 쓴 한강이 주인공이다. 그는 10일 “매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사진은 2019년 10월 제33회 인촌상(언론·문화 부문) 수상 당시 사진.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한강, 한국작가 첫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한강(54)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은 것은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아시아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2012년 중국의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국적 기준으로 노벨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913년·인도),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일본), 오에 겐자부로(1994년·일본), 모옌(2012년·중국) 등에 이어 한강이 5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 시간) 한강을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한림원이 공개한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정말 감사하다. 너무 놀랐고, 영광이다”라며 “한국 독자들, 동료 작가들에게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 폭력성과 상처 집요한 탐구… “시적 현대 산문의 혁신가”
한강의 작품 세계-수상 이유
폭력적 본성 파헤친 ‘채식주의자’… 5·18 상처 보듬은 ‘소년이 온다’
4·3 비극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특수성 넘어 세계적 공감
폭력적 본성 파헤친 ‘채식주의자’… 5·18 상처 보듬은 ‘소년이 온다’
4·3 비극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등… 한국 특수성 넘어 세계적 공감
스웨덴 한림원 노벨상 홈페이지에 올라온 소설가 한강의 초상. Niklas Elmehed ⓒ Nobel Prize Outreach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쓴 유명한 원로 작가 한승원의 딸인 한강은 어려서부터 문학과 친숙했다. 지천에 책이 널려 있던 집에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그의 날카로운 글쓰기가 그때부터 벼려졌다. 대학 재학 당시 시인 정현종의 시창작론 시간에 시 ‘이월’을 선보여 “무당기 같은 게 보인다”는 평을 들은 게 작가가 되는 계기였다고 본인은 회고한 바 있다.
등단 후 30년 동안 그는 늘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를 집요하게 헤집어 왔다.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딸 한강의 문학세계에 대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든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든지 하는 평을 하지만 그 아이는 사랑 문제를 이야기한다”며 “비극적인 사안을 묘사하고 인물들을 동원할지라도 결국은 큰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출간된 첫 장편소설 ‘검은 사슴’에서는 한낮에 도심을 알몸으로 달음박질하는 여자와 그녀를 찾아 강원도 오지를 헤매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의 광기 속에서 개인과 시대의 상처를 조명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강 소설의 본류라는 평이 나온다. 이후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화돼 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창비·2000년),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의 탈 속에 숨은 삶의 생채기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문학과지성사·2002년) 등을 거치며 특유의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색깔을 확립했다.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는 200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처음 게재된 중편소설로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에 대항해 햇빛과 물만으로 살아가려 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 간다고 생각한다. 결국 정신병원에까지 입원하게 되는 영혜를 통해 인간의 폭력적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전문가들은 ‘채식주의자’가 폭력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한강 특유의 서정적 문장으로 풀어냈다고 평한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오래된 미적 본능인 탐미주의를 극단까지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인간 욕망의 추함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한강 수상 이유2024년 노벨 문학상은 한국의 작가 한강에게 수여됐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입니다. 한강은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그녀는 몸과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에서 혁신자가 되었습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