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4개 작품 프랑스어로 번역한 피에르 비지우
소설가 한강의 작품 네 편을 프랑스어로 공동번역한 피에르 비지우. 그는 10일(현지 시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을 줄 알았다”며 감격했다. 프랑스 몰라 서점 유튜브 캡처
“한강이 노벨 문학상 받을 줄 확신했어요(Il était évident que Han Kang recevrait ce prix.)!”
10일 오후(현지 시간) 프랑스 번역가 피에르 비지우 씨는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감격에 차 숨넘어갈 듯 말하며 기뻐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최경란 주프랑스한국문화원 팀장과 공동 번역한 그는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수상 소식을 듣고 눈물부터 났다”고 했다. 그는 또 “정말 너무나도 행복하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비지우 씨와 한 작가의 인연은 무척 특별하다. 지난해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4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메디치상(외국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그가 1992년 설립한 출판사 ‘르세르펑아플륌’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희랍어 시간’의 프랑스 출간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 작가 작품을 포함해 ‘82년생 김지영’ 등 한국 작품만 15권을 번역했다. 영어권에 비해 한국 문학이 덜 알려진 프랑스 문단에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 주역인 셈이다.
비지우 씨는 “세계 문학에서 최고의 상인 노벨 문학상을 한강이 받을 건 분명했다”며 “스웨덴 한림원이 한 작가의 ‘독특한 자질’을 일찍이 알아봐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한 작가의 독특한 자질이란 뭘까.
“내밀한 고통(douleurs intimes)에 대한 탐구와 현대사를 결합한 점이죠. 한강의 강점은 바로 이런 용기, 사람들의 진심을 드러내는 용기에 있어요.”
제주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나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처럼 아픈 현대사를 통해 인간의 고통과 진심을 잘 표현해 냈다는 게 비지우 씨의 설명이다.
비지우 씨는 한 작가의 작품 출판에 참여하다가 문장에 반해 직접 ‘번역할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한강의 작품을 번역할 기회를 갖게 된 건 ‘새로운 문’을 여는 것 같았다”며 “그건 한 작가가 우리에게 준 엄청난 선물”이라 했다.
“이제 한국 문학에만 집중하자고 마음 먹고 2019년 ‘마르탱 칼므(고요한 아침)’란 출판사를 열었지만 시장이 더 어려워지면서 작년에 또 문을 닫았네요.”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한국 문학 번역을 이어간 건 잠재력이 컸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 작가의 소설은 ‘소년이 온다’라고 한다. ‘흰’은 “재능의 정수(quintessence du talent)가 집약된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라고 정의했다. 한 작가의 작품은 모두 훌륭하나 “독자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발견해 가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프랑스어 표지판.
● “韓 소설들, 불꽃으로 피어날 것”
한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덕에 여타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프랑스어권에서 큰 호응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내비쳤다. 그는 “한국 문학이 프랑스 및 프랑스어권 국가들에서 ‘빛’을 발할 모든 조건이 갖춰졌다”며 “노벨 문학상 수상이 ‘불꽃’이 돼 빛으로 솟아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과 프랑스 문단의 교류가 활발해지길 기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작품을 프랑스 독자들에게 많이 알리려면 무엇보다 (프랑스 독자들이) 한국 작가들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었어요.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남아 있었죠. 하지만 이제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그의 팬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