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 공천개입설로 시작된 명태균 씨 파문이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이뤄진 여론조사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경남 창원을 중심으로 활동해온 명 씨는 미래한국연구소라는 여론조사업체와 시사경남이라는 인터넷 매체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여론조사를 직접 하거나 외부에 맡겼다. 그런데 재정 기반이 취약한 명 씨가 대선 1년 전부터 몇몇 언론사와 함께 50차례 여론조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고, 57만 명의 국민의힘 당원 명부를 입수해 미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한 것이다.
▷50차례의 조사는 모두 PNR(피플네트웍스 리서치)이란 ARS 조사업체가 맡았다. 눈에 띄는 건 50번 중 윤석열 후보가 1위인 것이 49번이었다. 딱 한 차례 2위를 차지했는데, 대선 2개월 전인 2022년 1월 초 조사였다. 김건희 여사의 대국민 사과 10일 뒤였다. 그러나 대선 1년 동안 규모가 큰 다른 업체의 조사에선 윤석열 이재명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했다. ARS보다 응답률이 높은 전화면접을 하는 갤럽 조사가 대표적인데, 25회 조사 가운데 이 후보가 앞선 것이 15회였다.
▷그런데 명 씨와 함께 일했던 강혜경 씨가 유튜브에 출연해 폭로성 발언을 쏟아냈다. 강 씨는 “(대선이 임박했을 때) 3000∼5000개 샘플로 (여론)조사를 했다. 명 씨가 매일매일 윤 후보 쪽에 보고한다면서 빨리빨리 보고서 작성해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에 들어간 예산이 3억7520만 원이란 서류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영선 전 의원의 창원의창 보궐선거 대가설도 거론했다. 강 씨의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강 씨는 이달 21일 국감 출석을 예고한 상태인데, 그의 발언에 따라 정치권이 한바탕 요동을 칠 수도 있다.
▷여론조사 학자들은 “여론 자체만큼이나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론조사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통상 ARS가 아니라 훈련받은 면접원이 질문할수록, 응답률이 높을수록 품질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기에 조사의뢰자나 조사 수행업체의 기본적 자질도 필수적이다. 명 씨가 실제로 불투명한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워 정치 브로커 역할을 했다면 수사로 가릴 일이다. 만약 사실이라면, 여론조사가 아니라 심각한 여론 조작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