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심리] 자기 돈이 투자된 경우 그 돈이 아까워 합리적 판단 못 내려
친구가 가지고 있는 주식이 엄청나게 떨어졌다. 굉장히 좋은 회사라고 누구나 인정하는 주식인데도 떨어졌다. 손해가 막심하지만 지금은 팔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게 다시 오르기를, 수익을 바라기보다 매수한 가격대가 돼 손해를 메울 수 있기만을 바라고 있다.
“이 종목 언제쯤 회복될까.”
친구가 물었다.
“이 회사 매출이나 이익이 오르고 있어?”
“아니.”
“그럼 이 회사가 앞으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나.”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샀는데, 지금 보니 잘 모르겠어.”
“경기 순환적이라서 떨어졌다 올라갔다 떨어졌다 올라갔다 하는 주식인가.”
“그런 주기가 있지만, 지금은 그런 주기적 변화보다 더 떨어졌어. 지금 폭락은 그런 주기적인 게 아닌 것 같아.”
“그럼 왜 이 주식이 앞으로 오를 거라고, 최소한 산 가격대로 회복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만큼 내렸으니 오르지 않을까.”
매몰비용 오류는 투자한 돈이 아까워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GETTYIMAGES]
투자와 관련해 조심해야 할 심리적 오류 중 하나로 매몰비용 오류가 있다. 매몰비용 오류는 이미 투자한 금액이 아까워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오류다. 매몰비용 효과를 제시한 선구적 연구로 헬 아르케스 미국 오하이오대 심리학과 교수의 실험이 있다.
오하이오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학생들은 먼저 미시간으로 스키 여행을 가는 티켓을 100달러에 구입했다. 몇 주가 지나서 이 학생들이 이번에는 위스콘신으로 가는 스키 여행 티켓을 50달러에 샀다. 이후 여행 일자가 확정됐는데, 미시간으로 스키 여행을 가는 날짜와 위스콘신으로 스키 여행을 가는 날짜가 겹쳤다. 두 여행 모두 환불이 되지 않았다. 학생들은 미시간으로 갈지, 위스콘신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했다. 둘 중 학생들이 더 선호하고 더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한 여행지는 위스콘신이었다. 그런데 더 비싼 돈을 지불한 곳은 미시간이었다. 둘 중 하나만 가야 할 때 학생들은 어디를 선택했을까.
재미가 덜할 것 같지만 100달러를 지불한 미시간으로 가겠다고 선택한 학생은 54%였다. 반면 50달러를 지불했지만 더 재미있을 것으로 보이는 위스콘신으로 가겠다고 한 학생은 46%였다.
스키 여행비는 이미 지불했고, 어떤 선택을 하든 이 지출은 변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은 곳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반수가 넘는 학생이 ‘더 재미있을 곳’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한 곳’을 선택했다. 미시간에 가지 않으면 100달러를 포기하는 것 같고, 위스콘신에 가지 않으면 50달러를 포기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100달러를 포기하기 건 아깝다는 생각에 재미가 덜한 미시간을 선택한 것이다.
행동에 매몰비용 규모도 영향 미쳐또 연극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할인권 효과를 살펴본 실험도 있다. 오하이오 극장에는 1년간 상연하는 모든 연극을 볼 수 있는 시즌권이 있다. 시즌권을 사려는 이들을 무작위로 구분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즌권을 정가로 팔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13% 할인 프로모션,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47% 할인 프로모션을 적용했다. 정가로 산 사람, 13% 할인해서 산 사람, 47% 할인해서 산 사람은 1년 동안 연극 관람 횟수에 차이가 있었을까.
처음 반년 동안 정가로 표를 산 사람은 평균 4.11회 극장을 찾았다. 13% 할인 표를 산 사람은 3.32번, 47% 할인 표를 산 사람은 3.29번 연극을 관람했다. 이들은 시즌권을 구입할 만큼 원래부터 연극 애호가였다. 그런데 구입 가격에 따라 방문 횟수가 달랐다. 비싸게 구입한 사람이 더 많이 방문한 것이다.
시즌권을 산 것이니 극장을 몇 번 방문하든 추가 비용은 없었다. 그런데 똑같은 애호가라도 비싼 값을 주고 시즌권을 산 사람이 극장을 더 많이 찾았다. 비싼 가격에 티켓을 구매했을 때 자기가 이미 지불한 돈을 아까워하는 심리가 더 강했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매몰비용 크기가 사람들 행동에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세 번째 실험. 항공회사가 신기술을 활용해 비행기를 개발하려 한다. 1000만 달러(약 134억4000만 원)를 연구비로 책정해 개발 중이고, 이미 900만 달러를 지출했다. 100만 달러만 더 지출하면 프로젝트가 완성된다. 그런데 경쟁사가 바로 그 신기술을 활용해 비행기를 완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심지어 자사가 개발하는 비행기보다 성능이 더 좋았다. 이때 이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해 완성해야 할까, 아니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까.
프로젝트를 완성해봤자 이제 이익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응답자의 85%는 100만 달러를 더 투자해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고 응답했다. 포기하겠다고 한 사람은 응답자의 15%에 불과했다.
질문을 좀 바꿔서 경쟁사가 새로운 비행기를 제작했는데, 우리 회사도 100만 달러를 새로 투자하면 그런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 직원이 제안한다. 하지만 성능은 경쟁사의 비행기가 더 좋을 것이다. 이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새로 100만 달러를 투자하겠느냐고 물어봤다. 앞선 경우와 차이는 앞에서는 이미 900만 달러를 지출했지만, 여기에서는 지출한 돈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응답자의 83%는 이 프로젝트에 100만 달러를 투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똑같은 의사결정이고 효과도 같은데, 900만 달러를 이미 투자한 경우에는 85%가 100만 달러를 더 투자하겠다 했고, 기존에 투자한 돈이 없을 때는 83%가 투자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미 투자한 금액, 매몰비용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달라진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두 경우의 성공 확률 추정치다. 경쟁사가 더 좋은 비행기를 이미 완성했다. 이때 우리 회사가 새로운 비행기를 완성한다고 해서 잘 판매될 수 있을까. 900만 달러를 이미 투자한 경우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 확률은 평균 41%였다. 그런데 기존에 투자한 금액이 없을 때는 사람들이 프로젝트 성공 확률을 34%로 봤다. 투자한 금액이 있을 때는 프로젝트 성공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투자한 금액이 없을 때는 성공 확률이 낮다고 판단한 반면, 많은 금액을 투자한 이후에는 성공 확률이 높다고 봤다.
이렇듯 매몰비용 오류에 빠지면 자기 돈이 이미 투자된 경우 그 돈의 영향을 받아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한다. 투자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지만, 일단 돈이 들어가면 그 돈이 아까워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친구는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일까. 지금 돈이 있어서 주식을 새로 산다면 현재 가진 주식을 살 것인가. 매수 단가를 낮추는 물타기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정말 그 주식에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해 그것을 살 것인가. 그 대답이 “Yes”면 계속 가지고 있어도 된다. 반면 그 주식을 사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손해를 받아들이고 빠져나오는 게 답이다. 그게 매몰비용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60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