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 휴학 미승인 시 내년에도 안 돌아와… 서울 vs 대폭 증원 의대 초격차 우려 의사단체 분열? 정부도 의견 제각각… 대폭 증원 요청했던 의대, 부끄럽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은 “지금은 의학 교육의 단절, 의사와 전문의 배출 중단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이지만 정부도 전공의나 의대생도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다”며 “의료의 주인이자 최대 피해자인 국민을 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전공의 복귀 문제로 갈등하던 정부와 의료계가 의대생의 휴학 승인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가 의대 중 처음으로 휴학을 일괄 승인하자 교육부가 서울대를 감사하는 등 ‘휴학 도미노’를 막기 위해 단속에 나섰다. 교육부 차관이 4일 의대를 둔 40개 대학 총장을 온라인으로 소집해 “휴학 승인 시 현장 점검”을 압박한 데 이어 11일엔 교육부 장관이 총장들에게 “내년 복귀를 조건으로 휴학을 승인하라”며 학칙 개정을 요구했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종태 이사장은 “정부가 학생들의 미복귀에 대비한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재정 지원을 끊겠다고 겁박하며 무조건 휴학을 막으라고 한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휴학 승인”이라고 했다. 이대로 내년이 되면 휴학생과 증원된 신입생들까지 7500명이 한꺼번에 길게는 11년간 교육과 수련을 받아야 한다. 의료계에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윤석열 세대’ 의사들의 등장을 우려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생들이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몰아서 수업을 받고 유급을 면할 수 있다고 한다.
―교육부는 ‘국민 건강과 직결돼 있어 의대생들에겐 휴학의 자유가 없다’고 했다.
“휴학원을 제출한 학생들과의 일대일 면담을 통해 자유의사인지 확인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의무교육도 아닌 대학생 휴학을 무슨 수로 막나. 교육부가 수시로 학칙 개정을 요구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조차 훼손하고 있다. 국립대 사립대 모두 정부 재정 지원 사업에 묶여 있어 의대 사정을 들어주려다 다른 단과대까지 피해를 볼까 전전긍긍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의대를 5년제로 변경하는 방안에 대해 대학 의견을 수렴했느냐”란 질문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KAMC와 정례적으로 대화했다”고 밝혔다.
“5년제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 교육부와는 의대 교육 정상화를 위해 8월부터 대화해 왔다. 하지만 휴학 승인을 해달라는 협회 요구에 교육부는 기다려 달라는 말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 수시모집이 시작되고, 조금 더 있으면 수능 치고, 정시 시작되면 진짜 손 못 댈 거라고 믿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내년에도 전공의 의대생 모두 안 돌아온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비해 국립대 의대 교수를 3년간 1000명 늘리고, 내년도 지원 예산 4877억 원을 편성했다. 수업 준비가 제대로 되고 있나.
―의대 증원 인원의 60%가 사립대에 몰려 있다. 그런데 사립대에는 융자 알선 외엔 시설 투자나 교수 채용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다.
“지방 사립대들은 등록금이 주요 재원이어서 대부분 재정적으로 취약하다. 의대생 교육비가 등록금의 3배가 든다고 한다. 학교 입장에서는 증원을 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다. 그렇다고 등록금 재원을 의대에만 쓰면 다른 단과대들이 반발한다. 대출 받아 건물 짓고 뭘 하고 하는 게 매우 어려운 형편이다.”
―정원이 동결된 서울 지역 8개 의대도 내년 1학년은 정원의 두 배가 함께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서울대 의대는 135명이니 거의 270명이 한꺼번에….
“서울 지역 의대들은 형편이 낫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대폭 증원된 지방 대학들은 답을 찾기 굉장히 어렵다. 앞으로는 서울 지역 의대와 지방 의대 간 격차가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서울 지역 의대와 대폭 증원된 대학들 간의 초격차가 우려된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예과도 소규모 토론수업, 임상술기, 지역사회 실습, 의료인문학 교육, 프로젝트 수업 등 실습과 소규모 학습 비중이 크다.”
―정부가 대학별로 증원된 정원을 배분하면서 회의록을 남기지 않았다. 배분 기준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합리적인 기준을 찾기 어렵다. 학생을 많이 뽑아놔도 지역에 환자가 없으면 졸업 후 지역에서 의사 생활을 할 수 없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증원하고, 지역 의사로 남을 수 있도록 정책을 짜야 하는데 2000명이란 규모부터 정하고 마음대로 뿌려놓았다.”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30개 의대를 대상으로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평가해 내년 2월에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다. 불인증 판정을 받는 의대가 나올까.
“당장의 교육 여건뿐만 아니라 향후 연차별 교수 채용과 시설 확충 계획을 평가하기 때문에 1학년의 수업 공간이 마련돼 있고, 앞으로의 계획을 설득력 있게만 쓴다면 첫해는 큰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평가는 6년간 매년 하게 된다. 첫해는 한 학년만 증원되지만 그 다음 해엔 두 개 학년이 되고, 임상 실습에 들어가면 임상 교수와 시설 투자도 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어려움이 누적돼 2, 3년이 지나면 대학이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의평원이 엄격한 평가 인증을 예고하자 교육부가 의평원 이사회 구성이나 평가 방식에 개입하거나 의평원 지정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의평원은 2016년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학교육연맹(WFME)에서 의대 평가인증기관으로 인정받았다. 의평원 인증을 받은 대학들은 자동적으로 WFME의 인증을 받는 셈이 된다. 의평원의 인증이 없으면 미국 같은 의료 선진국에서 수련의로 선진 의료 기술을 배우고 교류하는 게 다 막혀 버린다. 국내 의대 나와봐야 밖에선 후진국 의사 취급을 받게 된다.”
―서남대 의대처럼 평가 인증에서 탈락해 폐교될 경우 피해 학생들이 정부와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나.
“정부는 전국 의대 수요 조사를 근거로 증원을 결정했다. 증원 규모에 최종 서명한 사람은 대학 총장들이다. 소송이 제기돼도 정부는 빠지고 결국 대학만 책임지게 될 것이다.”
―의정 갈등 사태가 장기화한 데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한 의사 단체의 책임도 크다.
“인정한다. 그런데 정부도 부처마다 딴 목소리여서 누구와 협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복지부 장관이 유감 표명을 하고 나면 대통령실 수석이 나와 강경 발언을 한다. 총리가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한 다음 날 대통령실 수석은 ‘올해 증원은 못 건든다’고 했다. 교육부의 ‘의대 5년제 단축’에 대해서도 복지부 장관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했다. 이러니 의정 간에 서로를 신뢰 못 하는 상황만 계속된다.”
―정부가 신설하는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의사단체들이 불참을 선언했다. 이 위원회 구성은 의사들도 요구했던 것 아닌가.
“추계위가 독립성도 결정 권한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계위가 추계하면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정원을 정하게 돼 있다. 그동안 의사 인력 수급 추계 관련 연구가 40여 개 있었는데 정부가 발주한 연구는 의사가 부족하다 하고, 의료계가 발주한 보고서는 모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의대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항구 정원’ 외에 ‘임시 정원’을 두어 수요에 따라 줄이거나 늘린다. 이렇게 하면 정원을 재조정할 때마다 홍역을 치를 필요가 없다.”
―결국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돌아와야 사태가 해결된다. 장상윤 대통령실 수석은 최근 토론회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왜 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발언해 비난을 받았다.
“의사 집단 내에서도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직역 카르텔이라며 악마화하고 모욕했다. 사직한 전공의들은 대부분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흉부외과 등 필수 의료를 택했던 의사들이다. 이들이 지금의 의사를 대신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 의료 정책을 미래 세대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좌절한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선 대통령이 젊은 의사와 의대생들에게 진정성을 담아 사과해야 한다. 여야의정 협의체든 뭐든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돌파구가 열린다.”
―의대 교수들도 제자들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수요 조사에서 각 대학이 써낸 숫자를 합하면 3401명이다. 대학의 증원 요청에 의대 학장들도 동원됐으니 학생들의 배신감이 클 것이다. 이제는 대학병원까지 망가지고 있다. 최근에 부산의 중학생 응급 환자가 대전 건양대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다. 부산에 대학병원이 6개나 있는데…. 참담하고 부끄럽다.”
이종태 KAMC 이사장(66)인제대 의대 명예교수. 예방의학 전문의, 의학교육 전문가로 인제대 의학교육실장과 학장을 역임하고, 40개 의대 학(원)장을 중심으로 전체 의대를 회원 기관으로 두고 있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교육이사와 정책연구소장을 지냈다. 올 8월 임기 2년의 KAMC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