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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공 아파트도 공급 차질… 인허가 10곳중 6곳 착공도 못해

입력 | 2024-10-14 03:00:00

사전청약 실수요자들 ‘발동동’



12일 경기 성남시 성남복정2지구 A1 신혼희망타운 현장. 발파 작업 이후 나온 파쇄석이 쌓여 있다. 이 단지는 2021년 12월 인허가를 받았지만 아직까지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성남=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공공분양 아파트 1612채가 들어서는 경기 과천시 주암지구 C1·2블록은 2020년 12월 주택사업계획승인(인허가)을 받았지만 3년 10개월이 지난 지금도 허허벌판이다. 서울 서초구와 과천시가 인허가 전부터 공공하수처리장 설치 구역을 놓고 갈등을 벌이면서 착공이 지연된 탓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갈등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덜컥 사전청약을 진행했다. 본청약은 올해 10월에서 내년 12월로 밀렸다. 김철수 과천 주암지구 C1·2연합회 대표는 “정부를 믿고 사전청약에 나선 당첨자들만 속이 타들어 간다”고 했다.

정부가 2020년부터 올해 7월까지 인허가를 내준 공공분양 단지 10곳 중 6곳이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공사비 상승 등으로 민간주택 공급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무주택자, 신혼부부 등에게 주로 공급되는 공공주택마저 공급이 지연되는 것이다. 정부는 주택 공급 실적을 집계할 때 공급의 첫 단계인 인허가를 기준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착공 지연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정부 발표와 실제 공급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올해 7월 공공분양 인허가가 이뤄진 전국 210개 단지(블록) 가운데 131곳(62.4%)이 미착공 상태인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 공급 규모로 따지면 13만3864채 가운데 8만1421채(60.8%)가 삽도 뜨지 못했다.




“ 주택공급 실적용 밀어내기 인허가”… 공사 지연엔 기다리란 말만


공공분양 단지 60% 미착공
현정부 들어 실적기준 착공→인허가… 인허가 이후 보상-이주 문제로 발목
공사비 고공행진에 더 지연 가능성
“착공-준공 물량도 공개해야”

부동산 업계에서는 공공분양 아파트의 경우 인허가 이후 1년 이내 착공하는 것을 정상적인 절차로 본다. 하지만 2020년과 2021년 인허가를 받아 이미 3, 4년이 지났는데도 착공하지 못한 단지는 104곳 중 45곳(43.3%), 주택 수로는 6만476채 중 2만4006채(40.0%)로 집계됐다. 인허가 이후 4년 7개월간 착공되지 않은 131곳 중 86곳은 착공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경기 성남시 성남복정2지구 A1블록 신혼희망타운(666채)은 2021년 12월 인허가를 받았지만 착공 계획조차 짜지 못했다. 주변 단지 반대 민원, 시유지 보상 등 문제로 입주 예정일이 내년 10월에서 무기한 연기됐다.

2019년 인허가를 받은 구리갈매역세권(1125채)은 일부 시설이 이주를 거부해 착공이 미뤄졌다. LH와 해당 시설 간 행정소송 끝에 올해 7월에야 이주가 완료됐다. 결혼 6년 차 이민수 씨(33)는 “올해 초부터 LH에 전화만 102건 했는데 LH에서는 ‘이주가 지연되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만 했다”며 “착공과 입주가 늦어지면서 본청약 때 분양가격이 상승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인허가 대비 착공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정부가 공급 실적을 늘리는 데만 치중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전 정부는 공공분양 실적 기준을 ‘착공’으로 매겼다. 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 기준을 더 초기 단계인 ‘인허가’로 바꿨다. 인허가 이후 착공에 돌입하기까지 공사비 상승, 소유주 보상, 지역 민원 등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안 의원은 “미착공 131개 블록 중 115개 단지의 인허가가 모두 12월에 이뤄졌다”며 “연간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 수년간 연말에 밀어내기식으로 인허가를 내준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민간 분양을 진행할 때 인허가를 받으려면 토지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반면 공공분양의 경우 사업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토지 수용과 인허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LH와 계약을 맺은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3, 4년 사이 발표한 3기 신도시나 대규모 신규 택지를 보면 인허가 이후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며 “보상이나 이주 문제 등이 발목을 잡아 착공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공사비가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 착공이 지연되면서 향후 LH와 시공사 간 갈등이 불거져 공급이 더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1년 하반기(7∼12월) 사전청약을 받은 3기 신도시와 신규 공공택지 지구 중 올해 4월까지 7개 지구가 사업비 증가로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이 지구들의 사업비 총합은 기존 1조5055억 원에서 1조9799억 원으로 4744억 원(31.5%) 증가했다.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착공이 지연되면 공사비 계약을 다시 맺어야 한다”며 “최근 공사비가 많이 올라 재계약 때 협의가 늦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급 실적을 공개할 때 정부가 인허가뿐만 아니라 착공, 준공 물량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은 “정부는 인허가 기준으로 공급 물량을 발표해놓고 각각의 물량이 인허가 이후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알리지 않고 있다”며 “수요자들이 미래 공급 물량을 파악할 수 있도록 인허가 이후 착공과 준공 물량, 입주 실적까지 함께 발표해야 한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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