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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국내 상륙한 위고비, 정말 ‘기적의 비만약’일까

입력 | 2024-10-14 23:21:00


몸의 기억은 집요하다. 신체에 일시적 변화가 있더라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인 항상성도 몸의 기억이 잡아끄는 힘이다. 항상성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지만, 반대로 만성 질환에서 벗어나는 걸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현대 의학의 난제 중 하나인 비만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강한 식단과 꾸준한 운동이 해법이란 걸 알면서도 비만을 부르는 몸의 기억에 이끌려 힘들게 뺀 살이 도로 찌는 게 다반사다.

▷15일 국내 출시되는 위고비가 ‘기적의 비만약’으로 불리는 이유는 몸의 기억을 속이는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위고비를 투약하면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신경을 억제해 조금만 먹어도 금방 포만감이 들게 하고 식욕도 떨어뜨린다. 예전 같으면 야밤에 그렇게 당기던 치킨이 덜 생각나고, 막상 시켜 먹어도 몇 조각 못 먹게 되는 식이다. 위고비는 자기 몸에 주사만 한 방 놓으면 이런 효과가 1주일이나 지속되고, 1년 4개월간 꾸준히 맞으면 체중을 평균 15%가량 감량할 수 있다고 한다.

▷위고비는 2021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됐을 때부터 뜨거운 인기에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주사기 1대 값이 약 45만 원, 한 달이면 180만 원이 들 정도로 비싸지만 주문이 폭주했다. 특히 일론 머스크, 킴 카다시안 등 유명인들이 위고비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 부자들 사이에선 ‘살 빠지는 비타민’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전 세계적 물량 부족 사태로 원래 지난해 하반기 예정이던 국내 출시도 1년가량 미뤄졌다.

▷하지만 위고비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약을 끊는 순간 ‘요요’가 시작된다. 안경을 쓴다고 눈이 좋아지진 않는 것과 같다. 몸을 잠깐은 속일 수 있지만 끝까지 속이진 못하는 것이다. 투약 기간 동안 건강한 생활 습관을 정립하지 않은 채로 약을 멈추면 그동안 눌러놓은 체중이 용수철 튀어 오르듯 금세 회복된다고 한다. 게다가 빠질 땐 근육과 지방이 같이 빠지지만 다시 찔 땐 지방이 급격히 늘어 전보다 악성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거액을 들여 장기간 투약하더라도 살 안 찌는 습관을 몸에 각인시키지 않으면 ‘꿈의 비만약’이라는 위고비도 무용지물이다. 또 비만 환자에게만 효과가 있을 뿐 일반인이 몸매 관리용으로 쓰다간 탈모, 췌장염 같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다이어트에는 지름길이 없고, 오래 걸리더라도 정도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비만약 시장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27%씩 급성장할 전망이라고 한다. 위고비를 만든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의 주가도 급등해 지난해 시가총액이 루이뷔통을 제치고 유럽 1위로 올라섰다. 살 빼는 정답이 뭔지 뻔히 알지만 당장의 쉬운 길 앞에서 인간의 의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시장은 간파하고 있는 것 같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