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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대통령은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다

입력 | 2024-10-16 23:21:00

“우리 남편 바보” 연상되는 김 여사 카톡
윤 대통령이 무슨 말 해도 권위 잃었다
대통령 부인 때문에 傾國之色 원하는가
‘도이치’ 재판받고 대통령실 전면 개편하라



대통령실 제공


국민으로서 일종의 병(病)에 걸린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세대 수시모집 논술시험 문제 유출 논란과 관련해 15일 교육 당국에 엄정한 조치와 철저한 문책을 주문했다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한 사람만 무혐의 처분이 예고되는 판국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싶어서다.

김건희 여사가 ‘공천 개입 의혹’ 핵심 관련자인 명태균 씨에게 보낸 카카오톡 기사를 본 뒤 병이 깊어진 게 분명하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오빠, 용서해주세오” “무식하면 원.래그래요”. 대통령이 뭔 말을 해도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이름하여 ‘무권위증’이다.

대통령실에선 그 ‘오빠’가 김 여사의 친오빠라고 서둘러 밝혔다. 김 여사와 친오빠가 대선캠프에 관여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윤 대통령도 대선 기간 중 ‘개사과’ 논란이 벌어지자 “원래 선거는 시쳇말로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하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명태균은 김 여사의 오빠가 정치를 논할 상대는 아니라고 했다. 며칠 전 한 방송에서 그는 “여사가 물어봐요. 우리 오빠가 상태가 어떠냐고”라고 말함으로써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오빠’로 칭한다는 걸 시사했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을 어떻게 보는지는 세상이 다 안다. 대선 전 김 여사 측이 MBC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7시간 통화’ 발언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

중장년 남자들은 자신들도 집에선 그런 대접 받는다며 낄낄 웃었다. 그러나 공(公)과 사(私)는 다르다. 문재인 정권 때 북에서 삶은 소대가리 운운한 것과도 차원이 다른 소리다. 공직 활동도 부인이 챙겨줘야 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면, 나라가 무너질 일이다. 그러니 선임행정관이 대통령을 꼴통으로 여기고, 공직사회는 움직이지 않으며, 민생경제는 어려워지는데 대통령은 의대 증원 2000명 같은 정책이나 불쑥 내미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년 반 동안의 많은 의문이 풀리는 듯하다. 김 여사는 비서실에 ‘김 여사 라인’을 두고 국정을 챙길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제2부속실은 둘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와 제2부속실을 설치한다지만 달라질 것도 없다. 김 여사가 지금 같은 활동을 계속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전임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경험했듯 우리 국민은, 헌법은 사인(私人)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김 여사가 아무리 선의로 “막상 대통령이 되면 좌나 우나 그런 거보다는 진짜 국민들을 먼저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고 해도 국민은 그런 대통령 부인을 용납하지 않는다.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에게서 그게 결국 국정농단으로, 사익 추구로 이용된다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벌써 국정감사장마다 김 여사 관련 업체 특혜 의혹과 구린내가 진동을 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낸 마키노 요시히로의 2017년 글을 굳이 인용하면, 한국인이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그토록 분개한 이유는 학식도 공적 직함도 없는 최순실 등 대단할 것 없는, 자격 없는 자들이 불공정한 방법으로 양반 노릇을 했기 때문이었다. 김 여사의 공적 활동에 다수 국민이 공분을 금치 못하는 데는 아내 역할만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학력 위조 전력이 있는, 주가조작 의혹이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검찰총장을 지냈고 대선 출마에 나서면서 ‘공정과 상식’을 내건 윤 대통령이 부인 문제에 단호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권 세력은 11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유죄 판결만 나오면 전세가 역전되리라고 믿고 싶겠지만 이런 식으로 2년 반을 버티긴 쉽지 않다. 한번 탄핵을 겪은 우리 국민이 또다시 탄핵 사태를 원치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야권은 더 세진 ‘김건희 특검법’을 들이밀 것이고, 윤 대통령이 또 거부권으로 맞서면 보수층도 더는 참아주기 어렵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고 하면 김 여사는 흡족할지 몰라도 대통령 부인 한 사람 지키기 위해 나라가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윤 대통령은 냉정해지기 바란다. 도이치모터스 사건만이라도 철저히 수사받게 하는 것이 오히려 김 여사를 구하는 길일 수 있다. 임기 반환점을 맞아 김 여사 라인 제거를 포함한 대통령실 전면 개편을 발표해 국민 앞에 떳떳해지고 새출발 함으로써 나라를 구했으면 한다.

윤석열 정부를 예고한 ‘7시간 통화’에서 김 여사는 “일반 국민은 바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은 ‘사인 김건희 씨’만큼 바보가 아니다. 대통령은 패밀리 비즈니스가 아니어야 한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