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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 많은 민족’ 한국인… 빵 아닌 밥문화 영향[권대영의 K푸드 인문학]

입력 | 2024-10-17 14:00:00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민족은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 한다. 왜 유난히 우리만 정이 많은 민족일까? 결국 빵 문화와 밥 문화 차이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서양의 빵 문화는 유럽의 밀 농사와 연관돼 있다. 밀의 특성은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나고 봄에 수확하는 품종이다. 따라서 겨울에 비가 많이 오는 기후 특성을 가진 지역에서 잘 자란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벼는 봄에 뿌려 가을에 수확하는 품종이다. 특히 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잘 자라고 강한 햇빛을 받아야 알이 토실토실 맺힌다.

인류가 아나톨리아반도를 거쳐 유럽으로 이동할 때 이 지역에서 풍부한 밀을 발견하면서 밀을 기반으로 빵 문화가 탄생했다. 유럽 빵 문화는 수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을 비롯해 미노아, 크레타, 미케네 문명, 그리스,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반면에 우리 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우랄산맥을 거쳐 아무르강을 지나 우리나라 지역에 자라고 있는 쌀(단립종)을 채취 및 재배하면서 밥 문화를 탄생시켰다.

밀가루를 이스트의 도움을 받아 물에 부풀린 다음 화덕과 같은 높은 온도에서 구우면 단백질(글루텐) 그물구조는 부풀어 유지되고 끈적해진(호화·糊化) 전분은 망 사이사이에 끼어들어가 아주 독특한 형태와 맛을 낸다. 화덕이 고온이기 때문에 물이 날아가 수분활성도는 크게 낮아지고 쉽게 상하지 않는다. 그래서 빵은 잘하면 며칠을 두고 먹을 수 있다. 먼 길을 갈 때는 휴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쌀은 글루텐과 같은 그물구조 단백질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양의 물이 있으면 풀어져 죽이나 풀이 된다. 쌀은 일정한 물의 양이 있을 때만 전분의 호화가 알맞게 돼 밥쌀 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맛있는 밥이 된다. 그러나 식으면 바로 노화돼 딱딱해지고 맛이 없어진다. 물이 여전히 많아 미생물에 의해 쉽게 쉬기도 한다. 예로부터 가장 맛있는 밥은 가마솥에서 바로 지은 밥이다.

빵은 저장할 수 있는 특징 덕에 일찍이 서양에서는 맛있게 만드는 제빵사가 있었고, 빵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었다. 일반 시민들은 빵을 사서 먹어야 했고, 빵을 사 먹기 위해 화폐가 발달했다. 2000년 전 화산에 묻혀버린 폼페이에서 발굴된 빵, 빵집의 오븐, 빵 가게, 죽은 제빵사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빵값에 항상 민감했다. 항상 빵의 가격과 화폐의 가치가 냉철하게 비교됐으며 빵을 구할 돈이 없을 정도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일반 시민들은 빵을 달라 외쳤고 이것이 곧 로마의 멸망,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졌다.

밥은 쉽게 쉬기 때문에 밥 문화는 시장화할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가나 손님이 오면, 심지어 길 가는 나그네가 와도 바로 지은 따뜻한 쌀밥을 대접했다. 텃밭에 있는 푸성귀와 있는 집 안에서 기르는 가축을 잡아 지극정성으로 밥상을 차렸다. 밥을 지어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게 하고 편히 쉬어가게 했다. 이 따뜻한 밥을 먹게 하고 편히 쉬어가게 하는 밥 문화가 ‘정’의 원천이다. 정성 들여 지은 따뜻한 밥에는 따뜻한 마음과 정이 있었다. 돈으로 빵을 사야 하는 서양인들에게는 결코 탄생할 수 없는 문화이다.

쌀과 반찬거리가 모두 시장화돼 버린 요즈음은 우리 전통 밥 문화에서 느끼는 정을 옛날 그대로 느낄 수 없다. 아쉬울 따름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