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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문열 “한강의 노벨상 수상, ‘문학 고급화’ 상징 봉우리 같은 것”

입력 | 2024-10-17 03:00:00

한국 대표 소설가 이문열 인터뷰
“매년 기다리다 우리가 받아 기뻐
책 많이 판 나는 노벨상에 안맞아… ‘채식주의자’ 읽고 새로움 느꼈다”
‘부악문원’서 주요작품 개정판 작업



올해 초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에서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문열. 건강 악화로 칩거 중인 그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우리 언어로 창작된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우리 언어로 창작된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겁니다.”

소설가 이문열(76)은 1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노벨 문학상은 세계 문학에 진입을 공식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황석영, 고은 등과 더불어 오랫동안 한국의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돼 온 그이기에 수상 직후 언론사들이 앞다퉈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칩거 중인 그와 통화가 이뤄진 건 수상 발표일로부터 나흘이 지난 14일 저녁이었다.

저녁 식사를 들 참이었다는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강 수상은) 누가 들어도 기뻐할 일이다. 흐뭇하게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해마다 기다려왔고, 그런데 ‘올해는 누구다’ 이런 일들이 반복됐잖아요. 우리가 받으니까 다른 데(다른 나라) 간 것보다 기쁜 거죠. 그저 담담하게 우리가 받았다는 것에 반가워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2014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도서전에 참석한 이문열, 한강, 김인숙, 김혜순, 황선미, 이승우, 신경숙, 윤태호 작가(왼쪽부터)가 나란히 서 있다. 런던=뉴시스

그는 한강을 “주로 해외에서 많이 봤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한승원 선배 딸이니까 모를 리가 없죠. 독일 프랑크푸르트나 영국 런던 등 해외 도서전에서 함께 활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문열과 한강은 2014년 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서 시인 김혜순, 소설가 황석영 등과 더불어 한국 대표 문인 10인으로 초청돼 나란히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의 첫 노벨 문학상이 후배에게 돌아갔다.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나는 노벨 문학상에 맞는 인물이 아닌 건 알지 않나. 책을 많이 팔아서 잘사는 작가는 안 된다”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같이 문학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다고 해서 뭐 경쟁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이문열은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고 있지는 않지만 주요 작품의 개정판을 손보고 있다. 귀향의 꿈을 안고 경북 영양에 지은 집이 2022년 불탄 뒤 그는 경기 이천시 부악문원에 머물고 있다. 건강을 염려하자 그는 “많이 좋아졌다. 산책도 하고 가드닝도 하고 있다”면서 “오늘도 나무 가지치기를 했다”고 했다.

이문열은 2004년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연재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 새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프란츠 카프카의 ‘단식 광대’가 특이한 충격을 줬듯, ‘채식주의자’도 특이하고 개성 있는 작품으로 봤다”고 했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1922년 펴낸 ‘단식 광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특기로 단식을 선보이는 광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엔 열광하던 관중의 반응이 시들해져도 단식을 계속하던 광대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그 자리는 표범으로 대체된다. 이에 비해 ‘채식주의자’는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육식을 끊으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무관심한 남편의 시점에서 서술한다. ‘채식주의자’는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하면서 한강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채식주의자’에 대해 이문열은 “말을 쓰는 방식과 보는 시각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것에 대한 혐오’를 다루는 작품은 잘 없었다”면서 “우리한테 흔히 있는 타입은 아니라서 새로워 보였다”고 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