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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세무자료 제출 거부로 92차례 18억 과태료… 다국적기업, 소송통해 2000만원만 내고 끝

입력 | 2024-10-17 03:00:00

세금 피하기 위해 과태료 제재 악용
“이행강제금 등 도입 필요” 지적




2019년 서울지방국세청은 한 다국적 정보기술(IT) 기업의 한국 본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벌였다. 한국에서 연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이 법인세를 적법하게 내고 있는지 살펴보는 조사였다.

조사 과정에서 세무 당국은 외화 송금 내역 등의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업은 제출을 거부했고 세무 당국은 92차례에 걸쳐 18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자료 제출 거부에는 최대 5000만 원까지 과태료를 매길 수 있는데 기업이 수십 건의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보고 중복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2021년 법원은 92건의 거부 행위가 ‘단일한 고의’로 이뤄졌다며 2000만 원만 부과하는 것이 맞다고 결정 내렸다.

이처럼 다국적 기업 등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실효성이 낮은 과태료 제재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에 이행강제금처럼 보다 강력한 제재 수단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세청이 국민의힘 이종욱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국세청이 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 부과한 과태료는 44건, 2억7000만 원으로 건당 평균 614만 원에 그쳤다. 반면, 과태료가 부과된 법인의 연 매출액은 평균 31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국세청은 일평균 매출액의 0.3%에 미제출 일수를 곱하는 식의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해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치권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진행된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2021년) 판결 이후에 다국적 기업에서는 국세청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최대한 버티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고의적인 자료 제출 거부에 대해서는 이행강제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감에서 대통령 관저 공사를 맡았던 기업의 세금 탈루 의혹이 제기되자 강민수 국세청장은 “탈루 혐의가 있으면 시기가 언제든 반드시 조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내년 시행을 앞두고 유예 논의가 진행 중인 금융투자소득세가 현실적으로 부과 가능하냐는 물음에는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고 답했다.



세종=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