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술 발전과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아미시 교인들은 여전히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자전거조차 급진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진 출처 ‘AmishVillage’ 홈페이지
18세기 생활 양식을 고수하고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미국의 원리주의 개신교 교파 ‘아미시(Amish)’가 미 대선을 3주가량 앞두고 주목받고 있다. 그간 신앙 생활을 중시하며 현실 정치 참여를 지양했던 아미시 공동체에서 최근 변화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대선의 최대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8만 6000여명의 아미시 교인이 ‘초박빙’ 접전 상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은 16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보수 성향의 아미시 유권자 표심을 확보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 측이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술 문명과 동떨어져 사는 아미시 공동체는 TV 광고 등을 접하지 못하므로, 아미시 정착촌이 있는 ‘랭커스터 카운티’에서 매주 열리는 시장에서 유권자 등록을 홍보하고 트럼프 후보에 투표하도록 설득하는 방식이다.
랭커스터 카운티에서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후보 지지 단체인 ‘얼리 보트 액션(Early Vote Action)’은 더타임스에 “매주 화요일 시장에서 15명~20명의 아미시 교인들이 공화당 유권자로 등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장인 라이언 색스톤은 “아미시는 올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공화당)는 그들(아미시)로부터 훨씬 더 많은 열정을 보고 있다”며 “그들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엄지를 추켜세운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열린 캠페인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인디애나=AP 뉴시스
2020년 대선 당시 트럼프 후보는 펜실베이니아에서 8만 표 차이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2022년 기준 펜실베이니아주의 아미시 교인 인구는 약 8만6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영 일간 인디펜던트는 “공화당 일각에서는, 트럼프 캠프가 아직 미개척지나 다름없는 8만여 명의 유권자를 끌어올 수 있다면 전세를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종교 공동체에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와 ‘종교적 자유 보장’을 내세워 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아미시 공동체가 올해 트럼프 후보에 투표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판단하는 배경에는 1월 ‘생우유 판매 금지’ 사건이 있다. 1월 아미시 낙농업자 에이머스 밀러는 저온 살균 공정을 거치지 않은 우유를 판매해 조류인플루엔자 H5N1이 확산하는 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주에서 생우유 판매를 금지당했다. 색스톤은 “아미시는 정부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팔 수 있는 권리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한다”며 정부와의 갈등이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를 위한 아미시’ 팻말을 들고 서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겸 전 대통령 지지자의 모습. 사진 출처 ‘X’
다만 이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설지, 실제로 대선 결과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아미시 공동체의 투표 경향을 연구해온 엘리자베스타운 대학의 스티븐 놀트 교수에 따르면 매 아미시 교인의 투표율이 꾸준히 증가해 2020년 대선에선 교인 약 7%가 투표에 참여했다.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아미시 인구의 절반 이상이 18세 미만으로 투표할 수 없는 인구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놀트 교수는 “올해 더 많은 수의 아미시 교인들이 투표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정말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 만한 숫자의 유권자들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더타임스에 전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는 펜실베이니아주를 비롯한 경합주에서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 겸 부통령과 오차범위 내에서 우위를 다투고 있다. 하버드대 미국정치연구소(CAPS)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폴이 11~13일 등록 유권자 314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합주에서 조기 투표 의향을 밝힌 유권자들 중 트럼프 후보에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48%로 해리스 후보보다 1%포인트 높았다.
김윤진 기자 ky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