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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신광영]재산 지키려 사퇴하며 자화자찬, 낯 두꺼운 구로구청장

입력 | 2024-10-17 23:21:00


재산이 196억 원인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은 서울 구청장 중 두 번째 부자다. 구로구에서 중견 정보통신업체를 경영하며 부를 쌓았다. 여기엔 170억 원어치 회사 비상장주식이 포함돼 있다. 문 구청장은 최근 법원이 이 주식을 백지신탁하라고 판결하자 주식을 포기할 순 없다며 구청장직을 내놨다. 백지신탁은 고위 공직자의 이해 상충 문제를 막기 위해 2005년 도입된 제도다. 직무상 알게 된 정보로 주식 거래를 하거나 자기 주식의 가치가 오르도록 정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목적이다. 직무 관련성이 있는 주식은 당선 또는 임명 후 두 달 내에 팔거나 금융기관에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는 재산상 손해를 보거나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다. 기업인의 공직 진출을 제약하는 제도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공복이 되기로 결심한 선출직 공직자라면 그 정도 책임을 감수해야 하고, 자신이 없으면 공직에 나서지 말라는 게 대체적인 사회적 합의다. 공직자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익을 위해 악용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없이는 공직의 권위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두 차례 총선 출마 경험이 있는 문 구청장은 2년 전 구청장 선거에 나서며 주식 백지신탁 가능성을 따져봤을 것이다. 그는 제도의 허점을 노렸던 것 같다. 인사혁신처가 백지신탁 결정을 해도 공직자가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내면 몇 년을 끌며 임기를 채울 수도 있다.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던 고위 공직자들 사례를 보며 그 역시 피해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법하다.

▷문 구청장이 불복 소송을 하며 버티는 동안 그의 주식 가치는 49억 원가량 올랐다. 대신 구민들은 공석이 된 구청장 보궐선거를 치르는 데 드는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에게 구청장직은 어떤 자리였을까. 문 구청장은 출마 당시 “기업을 운영해본 경험이 구정을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해 당선됐다. 하지만 그는 이득이 안 되는 공직이라면 미련 없이 내던지는 모습으로 구민들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문 구청장은 16일 퇴임식에서도 그의 그릇된 공직관을 다시 한번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그는 “백지신탁이라는 기업인 출신 구청장에게 가해진 불합리한 제재가 예정돼 직을 수행하기 어렵게 됐다”며 퇴임사를 시작했다. 이어 2년여 재임 기간 동안 받은 각종 표창 등 A4 종이에 써온 구정 성과를 10여 분간 읽으며 자화자찬했다. 그는 스스로를 불운의 공직자로 여기는 듯했다. 보다 못한 한 구민이 소리쳤다. “구로구 주민들에게 안 미안하십니까.” 이날 퇴임식이 끝날 때까지 구민들을 향한 사과는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