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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길진균]선거는 끝났지만 잊어선 안 될 재보선 유발 책임자들

입력 | 2024-10-17 23:18:00

길진균 논설위원


구청장·군수 4명을 다시 뽑는 10·16 재·보선이 끝났다. 그중 전남 곡성군과 영광군은 현역 군수가 위법행위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는 바람에 선거를 다시 치른 곳이다. 공교롭게도 선거 당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자진 사퇴를 발표했는데, 내년에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모두 정치인들이 법을 잘 지켰거나, 사적 이익을 위해 그만두지 않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될 선거’다.


“잘못은 단체장이, 비용은 주민이”


선거법상 지자체장 선거는 해당 지자체 예산으로 치르게 돼 있다. 재·보선도 마찬가지다. 영광군은 이번 선거를 위해 14억6700만 원을 선관위에 관리 비용으로 냈다. 곡성군도 10억7800만 원을 썼다. 영광에선 전임 강종만 군수가 2022년 지방선거 때 금품을 건넨 탓에 재선거가 열렸다. 곡성 역시 이상철 전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상실했다.

잘못은 정치인인 두 군수가 했는데, 25억 원이 넘는 선거 비용은 영광군, 곡성군 주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다. 선거 비용은 크게 선관위가 쓰는 투·개표 관리 비용과 후보들이 쓴 선거운동 비용을 나중에 돌려주는 보전금 등 두 가지로 구성된다. 15% 이상 득표한 후보자는 선거 비용 전액을 돌려받는데, 이 보전금은 지자체가 낸 예산에서 지급된다.

물론 선거법 위반으로 선거 결과가 무효가 되면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문제 후보는 받았던 보전금을 토해내야 한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4차례의 지방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치인 261명이 보전금 반환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이 반환하지 않았는지, 안 했다면 미반환 금액은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을 이유로 선관위가 이를 공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버티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반환 않는 ‘먹튀’ 정치인은 65명, 그 금액은 168억 원에 이른다.

선거범죄가 아니라 다른 사유로 지자체장이 직을 상실했을 때는 아예 보전금 반환 의무가 없다. 문헌일 전 구청장이 백지신탁을 거부하고 스스로 그만둔 구로구의 경우, 20억∼30억 원으로 예상되는 보궐선거 비용을 전액 구의 예산으로 메워야 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28억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그런데 2022년 지방선거 때 그곳에서 당선됐던 김태우 전 구청장은 2023년 물러나면서 한 푼의 보전금도 반환할 필요가 없었다. 당선 무효형은 선고됐지만, 그 사유가 선거범죄가 아니라 공무상 비밀누설죄 위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유죄 확정으로 생긴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했다.


“지자체장과 정당이 비용 부담해야”


그동안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보전금 반환 대상 범죄를 넓히라”거나 “문제를 일으킨 지자체장과 정당에 선거 비용을 부담시키라”는 요구를 해 왔다. 선관위도 선거법 개정 의견을 2021년 국회에 제출했다. 선관위 의견에는 선거 비용을 미반환한 정치인의 인적사항과 금액을 공개하고, 미반환 사실이 있는 정치인이 후보자로 다시 나설 땐 그 내용을 후보자 정보자료에 기재하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국회는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문제적 인물을 공천한 책임이 있는 정당과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기 부담을 키울 리 없다. 선거 때 상대 정당이나 후보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지자체장의 순직 등 부득이한 사유로 재·보선을 치르는 건 사정이 다르다. 그렇지만 선거법 위반뿐 아니라 부정부패, 기타 개인적인 이유로 다시 선거를 치르게 됐다면 ‘원인 제공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10월 재·보궐선거는 끝났지만 ‘하지 않아도 될 선거’를 유발한 정치인과 정당의 책임을 잊어선 안 된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