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연출가 겸 배우 데플로리안 25일 시작해 내달 파리서도 공연… “한강의 작품 읽고 며칠동안 감동 폭력적 장면은 연극에 담지 않아… 결국 주제는 인류의 위대한 사랑”
“‘채식주의자’ 연극 리허설을 매번 울면서 마쳤어요. 극 중 인물을 모두 이해하게 됐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연극으로 처음 선보이는 이탈리아의 연출가 겸 배우 다리아 데플로리안 씨(65·사진)는 16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채식주의자를 연극화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한국적인 측면뿐 아니라 보편적인 의미와 주제로 작업했기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며 “감동과 눈물 속에 리허설을 마무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채식주의자를 어떻게 접하게 됐나.
“2018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1912∼2007)의 영화에 참여했다. 이 영화에선 이탈리아의 유명 여배우가 한 아내를 연기한다. 남편은 아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영화 작업이 발표됐을 때 내 친구가 한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책을 읽었는데 읽은 지 며칠 만에 너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안무가 겸 연기자인 안토니오 탈리에리니와 15년간의 공동 작업을 끝내고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여성으로서 홀로 무얼 할지 생각하다가 한 작가 작품의 ‘영혜’에 대해 작업할 때라고 마음먹었다.”
―영혜에게서 비슷한 점을 발견한 것인지….
“연극엔 주인공 영혜와 남편, 언니와 형부 등 4명이 등장하는데 나는 언니 역을 맡았다. 역할을 해냈을 때 정말 많이 울었다.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라 형부도 잘 이해했다. 형부가 영혜에게 끌리는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모두 이해했다. 내가 영혜를 정말 사랑한 이유는 영혜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꿈을 꾸는 책임감, 결코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게 해줬다.”
이탈리아 극단 인덱스의 연극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 역을 맡은 배우가 텅 빈 집 안의 매트리스 위에서 뛰고 있다. 인덱스는 소설가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를 세계 최초로 연극화해서 2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볼로냐를 시작으로 유럽 각지에서 공연한다. 인덱스 제공
―소설이나 연극 대본에서 잊을 수 없는 문구는….
“신비롭고 환상적이면서도 듣기 힘든 문장은 영혜의 이 대사다. ‘죽는 게 왜 그렇게 끔찍한가요?(Why is it so terrible to die?)’ 영혜는 언니가 떠나는 게 너무 슬프지만 언니가 ‘죽는 게 싫고 두렵다’고 말할 때 이렇게 말한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질문이다.”
―영혜가 왜 이렇게 말했을까.
“이 대사는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말만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유럽 문화권에서 자라서 ‘윤회’라는 개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데, 이 대사에서 ‘우리는 끝이 아닌 것을 끝이라고 부른다’는 인상도 받았다.”
―원작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연기하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전반적으로 공연을 마무리하는 방법이 어려웠다. 정말 울면서 리허설을 마쳤다. 소설은 보이진 않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고 무대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보여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다. 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고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가족 점심식사 장면은 등장인물이 4명이라 참 어려웠다. 처음에는 (무대에 없는) 가족들 목소리를 녹음해 틀까 생각했지만 재미가 없었다. 그 대신 연극의 오랜 기술을 활용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듯 묘사했다. 그리스 비극에서처럼 폭력적이고 힘든 장면은 무대에 절대 올리지 않았다.”
―한 작가의 다른 작품은 어떻게 봤는지….
“채식주의자를 이해하려면 ‘흰’ ‘희랍어 수업’ ‘작별하지 않는다’ 등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그의 작품엔 교향곡처럼 음표와 주제가 있다. 돌아오는 후렴구도 있다. 매번 인간성, 운명, 자매의 사랑, 전쟁과 폭력 등의 후렴구가 계속 돌아온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인류에 대한 위대한 사랑을 말한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