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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인간의 눈 너머 신의 눈까지… 당신이 보는 세상은

입력 | 2024-10-19 01:40:00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저자
생물학-예술-종교 등 넘나들며
‘본다는 것’에 대한 연구 집대성
◇눈 뇌 문학/석영중 지음/688쪽·4만8000원·열린책들




러시아 문학 전문가인 저자는 약 15년 전 안구 건조증과 비문증(눈앞에 이물질이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는 증상)을 심하게 앓으면서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졌다.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눈에 관한 여러 연구서를 읽던 중 ‘눈이 없어도 뇌만 있다면 대상을 볼 수 있다’는 신경과학의 가설에 강렬한 흥미를 느낀다. 이는 문학을 넘어 눈과 뇌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으며, 이 책은 그 과정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시작은 지구상에 눈이 탄생한 과정이다. 지구에 생명체가 등장한 시기는 약 45억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삼엽충이 눈을 갖게 된 때는 약 5억 년 전. 그러니 지구 위 생명체들은 40억 년 동안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살았다는 얘기다. 어둠 속에서 생명들이 꿈틀거리고 아우성치는 모습을 저자는 러시아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전위적 음악 ‘봄의 제전’에 빗댄다.

이렇게 생물학, 신경학 등 과학적으로 연구한 시각에 관한 내용을 저자는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과 엮어 서술해 나간다. 도스토옙스키의 ‘백야’에서 주인공이 실연을 겪고 난 뒤 갑자기 주변 풍경이 어둡고 침울하게 보이는 현상을 묘사한 것을 두고 지각 심리학의 ‘인지적 침투’(인간의 지각이 믿음, 욕망, 정서 등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는 가설)로 설명하는 식이다.

이 밖에 인간이 너무 작거나, 크거나, 멀리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기 위해 도구를 발명하는가 하면, ‘내면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등 ‘보기’의 다양한 양상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시각의 윤리’를 언급하는데, 이는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보지 않기로 하는지, 또 감시하는 눈이 있음에도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의 의미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막 장 ‘신의 눈을 흉내 내는 시선’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연민과 삶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도스토옙스키 같은 문학 대가들이 상상한 신의 눈은 보편적 참회와 구원의 눈물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응시 같은 것들이다. 인류의 역사 속 ‘보기’의 의미를 조명하는 것을 통해 저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